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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할 땐 그냥 해볼까?

큐브대회 참석일기

우리 집에 큐브천재가 있다. 고 녀석은 2학년 상반기 처음 나간 대회에서  3 종목 입상을 시작으로 2학년 하반기 대회 3*3*3 큐브에서 1등, 3학년 상반기 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했었다.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닌 이 대회에 내가 애정을 가지고 참가한 것은 아이가 우승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하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력이 없는 아빠와 엄마, 형아마저 차분한 '조용한 가족'에서 두드러지는 활동성과 반항성향을 겸비한 아들은 문제아인 듯하나 문제아는 아, 그러나 문제아처럼 가족모두의 신경을 긁어대는, 묘한 아이였다. 매일 혼쭐이 나던 아이는 누구도 '너는 문제야'라고 입밖에 내지 않았으나, 스스로 기가 막히게 느끼고 있었다. 본인이 이상한 아이라고.

사실 문제는 아이가 아니었다. 수많은 금쪽이 사례에서 나오듯, 이 아이를 품기엔 우리 가족의 그릇은 간장종지도 못  만큼 작은 것이 문제 었다.

알고도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 썩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던 무렵, 녀석이 처음으로 가족의 찬사를 받은 것이 큐브대회였다. 스스로도 잘하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고 남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게 된 계기. 나는 아무리 바빠도 꼭 대회를 챙겨 참석했다.


그런이번 대회는 난관이 있었다. 일단 장소가 인천. 우리 집에서 자차로도 1시간이 훌쩍 넘는 곳이 경기 장소로 확정되었다. 게다가 남편이 당일날 출근을 해야 해서 우리를 차로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다. 나는 장롱면허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3학년인 둘째는 9:30분, 5학년인 첫째는 16:30분에 대회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간을 또 어찌 보낸담. 머리가 아파왔다. 가지 말까? 요즘 야구로 둘째의 큐브사랑이 시들한 느낌이긴 했다.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연습도 안 하고.

가지 말까?

첫째가 당치 않은 소리 말라고 했다. 참가비만 10만 원.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에라 모르겠다. 전날 나는 단단히 일렀다.

가는데 1시간 30분 걸려 지하철 타야 하고. 9시 30분 까지니깐 7시엔 일어나야 돼.

대회당일. 비 온다. 아후 일이 꼬라니깐. 눈을 떴지만 몸은 일으켜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애들을 슬쩍 깨워본다. 신나서 벌떡 일어나는 느낌은 아니다. 밍기적 대며 내 신경을 긁는다. 결국 뱉었다.

이럴 거면 가지 말자. 그냥.

야비하다. 내가 힘들어 가기 싫으면서 니들이 하는 꼬라지가 맘에 안 들어 안 간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긴다.


잠시 침묵 끝에 다시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엄청 가고 싶은 상황은 아닌데 또 엄청 가기 싫지도 않은 애매한 상황. 이럴 때 나는 대체로 포기하는 타입이지만 오늘은 왠지 습관처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대회장소까지 지하철로 1시간 30분. 살다 살다 인천을 지하철로 가보긴 처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더  결국 지하철은 1시간 30분 뒤 정확히 종착지에 도착했다. 도착지에서도 난관은 끊이지 않았다. 대회장소는 한 대학의 체육관이었는데 정문에서 천만 개의 계단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었다. 헉헉대며 셋이 도착. 둘째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의 대회 기록이 전보다 확실히 빨라진 게 눈에 띈다. 전에 아들의 우승기록과 비슷한 기록의 여러 선수들이 보였다. 어렵겠다. 싶었다. 아들은 최선을 다해 돌려댔지만 아쉽게 7위에 머물렀다. 당연했다. 녀석은 지난번 대회 이후 큐브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과 후 큐브수업신청실패로 수업도 못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 보기엔 연습량에 비하면 엄청 훌륭한 기록이지만 1위를 못해 속상했는지 엄청 실망해서 똥 씹은 얼굴로 우수상을 받았다.  

실망한 아들을 다독다독만 해줬으면 좋으련만, 연습을 안 했는데 그 정도면 훌륭하다 연습 안 했는데 일등을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니 애는 또 더 삐져서 심술을 부려댔다.

'에라. 네 기분은 네가 풀어라. 난 모르겠다.'모드로 내버려두니 우수상 메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한다.  

이게  1등 우승컵보다 더 멋지지?

이때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암~그럼. 메달은 진짜 금메달 같은데 우승컵은 꼭 플라스틱 가짜 같잖아 볼품없어. 어쩜 이렇게 멋지지?

점심을  우고 시간을 보내려 간 커피집에서 1학년 꼬마가 메달에 보내는 경탄의 눈빛에 또 한 번, 둘째는 서운한 마음을 풀었다.


첫째는 기록이 저조한 편이지만 한 번도 대회를 지레 포기한 적이 없다. 둘째가 매번 상을 받고 본인만 못 받으면 서운할 법도 한데 한 번도 서운하다며 툴툴대지 않는다. 나는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누가 나보다 좀 나으면 질투에 사로 잡혀 헐뜯거나 남보다 못하는 내가 싫어서 포기하는 일들이 허다한데, 나보다 훌륭한 인격자임이 틀림없다. 녀석의 기록은 이번에도 중간정도이지만 저번보다는 나아졌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대회가 끝나고 치킨으로 저녁을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한다. 주말에 보통 동영상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던 우리 셋은 오늘은 서로를 격려하기도 싸우기도 칭찬하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엄청 멀리 온 대회에서 3연승은 실패했고, 특별한 일도 없고, 밥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천만 개의 계단을 두세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정신줄놓은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가고 있었다. 둘째는 실패에 감정을 도닥이는 법을, 첫째는 사소한 성장에도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벌써 깨우치고는 멋진 형아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별할 것 없는  하루 속에서 온전히 녀석들만 바라보며 기특함을 찾아낸 오늘을 잘 담아두어야겠다 싶다.

 

선장군처럼 두 아들을 양 옆에 끼고 역으로 가며 물었다.

오늘 재밌었다 그렇지?
응! 엄청 힘든데 재밌었어!

 할까 말까 싶을 땐 그냥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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