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을 때의,  심쿵.

고지식한 아이의 성장기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약간은 도가 지나치게 표현하는 작은 아들에 비해 큰 아들은 비교적 순응도가 높은 편이었다. 엄마말도 잘 들으니 선생님 말씀은 말할 것도 없다. 유치원에 처음 보냈던 6살, '청소왕'딱지를 가슴팍에 자랑스럽게 붙여왔다.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했을지 눈에 빤해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났다. 역시나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녀석의 유전자에 '고지식함'을 새겨 넣은 장본인인 내가 원망스러웠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음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누구보다 먼저 지치서 나동그라짐을 겪고 좌절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성격이 어디 뜯어고친다고 고쳐지는 것이던가. 지켜볼 뿐이었다.  5학년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장지에 있던 어느 오후,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답답한 구석은 있을지언정 모범생인 아들에게 무슨 일일까?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어머님. ㅎ이가 요즘 발표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요. 그런데요..

사건은 이랬다. 평소 아들은 밥을 먹으면 밥알 한 톨 남기지 않았다. 다 먹은 밥그릇은 발우공양 한 것 마냥 깨끗했다. 카레같이 소스가 있는 날은 밥으로 설거지 하는 것처럼 그릇의 소스를 닦아  먹었다. 우리끼린 웃으며 접시를 핥은 거냐 말하곤 했는데, 그때도 그저 애가 먹는 걸 좋아식을 남기는 걸 싫어하나 보다 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급식을 남김없이 먹던 아들은 앞에 앉은 친구가 급식을 남기는 걸 보고 "먹어라, 먹어라"를 외치며 응원(?)을 했다. 응원에 힘입어 밥을 다 먹은 친구는 다음번엔 둘이 같이 다른 친구들을 독려했다. 이러자 이 <먹어라! 캠페인>이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붐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커지면 강요처럼 느껴지고 불편한 친구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불편했던 누군가가 학급회의 시간에 '강요하지 마라'를 안건으로 냈고 격렬한 토론 끝에 선생님이 결론을 내셨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먹어봐'라고 권유는 한두 번 하되 혹시 친구가 그래도 힘들어하면 더 이상은 얘기하지 않기로. '먹어라'라고 여럿이 외치지는 말기로.

그렇게 회의를 끝냈더니 아들이 울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다독였더니 '선생님 근데 급식을 남기는 건 잘못된 일이잖아요'라고 얘기했다고.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마음이 약한 아인데 이런 일로 아이들과 틀어져서 사이가 안 좋아질까 걱정되셔서 전화를 주신 거였다.

나 또한 걱정이 되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말 잘 듣는 어린이 지낼 때에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그렇게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두드러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튀어나온 못처럼 두드려 맞으면 어쩌지? 저만 안 남기면 됐지 왜 남들도 남기지 말라고 그러는 걸까?

아이와의 길고 긴 대화 끝에 알게 된 것은 선생님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한 아이의 불만이었다.

너희가 어른이었으면 당연히 투표를 하거나 해서 결정하겠지만 아직 어린이고 학급에 대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선생님께 있어. 너희들의 토론을 잘 듣고 선생님이 결론을 내셨다면 따르는 게 옳지. 민주주의에서 투표로 결정된 사항을 따르는 일과 마찬가지야. 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따라야지.'먹어라'를 외치면서 친구들을 응원하는 일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아이가 처음으로 학급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이어서  나도 그저 응원만 해주고 싶었지만 학급분위기에 저해되는 역할을 하도록 두기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다.

며칠 후 녀석의 가방을 정리하다 꼬질꼬질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헌법과 기타 법률에 어긋나는 급식 남기기에 반대한다는 한 장짜리 내용에 친구들 이름이 한편에 쓰여있었다. 내용에는 법조항이 조목조목 적혀있었다. 눈이 똥그래져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먹어라> 조직위원회의 다른 조직원이 작성해 와서 동의 서명을 받고 있단다.  웃음이 나서 픽  웃었다.  

자유일기를 쓴 어느 날, 아들은 급식에 대한 글을 썼고 다행히 선생님은 괘씸해하지 않으시고 그 글을 친구들 앞에서 읽어 주셨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 그동안 선생님과 공부했던 내용들, 헌법, 토론 시 논거를 대는 방법,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한 10가지 이유  등 지식을 총동원하여  글을 쓴 것을 기특히 여기셨던 모양이다.

 녀석들은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먹어라'외치하지 않았지만 급식 남기지 않기를 위해 나름 합법적인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중요한 꺾이지 않고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먹어라> 조직의 활동 때문인지 반아이들이 급식을 다 먹고 있다고 한다. 그저 별 것 아닌 행동들에 변화된 반 분위기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무되어 있을지 눈에 선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윽박질러 반을 규율했을 선생님들이 지금은 얼마나 아이들을 존중하시는지 보였다. 그게 없었다면 아이들의 이런 활동은 불가능했을 테다.

나를 닮은 고지식한 아들은 주변의 도움으로 나보다 현명하게,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기임대 탐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