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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명품 구입기

# 보테가베네타는 샤넬 급이람말이야!!

남편의 생일이었다. 2009년쯤 결혼을 하고 그사이 토끼 같은 아들하나와 살쾡이 같은 아들하나를 낳고 사는 동안, 우리가 서로의 생일을 몇 번이나 챙겼을까.


최근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진 지인은 서로 너무나 아꼈던 부부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이가 생기고부터라고 했다. 맞장구를 쳐줄 생각에 내 결혼생활을 돌아봤다. 아니다. 우리는 애가 없을 때도 줄기차게 싸워댔다. 자기 피셜로 깔끔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데 협조는커녕 훼방 놓는다며 나를 못마땅해 했다. 그때 나는 매일 밤 10시 11시 퇴근이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어지를 시간은 없었을 터인데도, 내가 문제라고 했다.

본디 안 맞는 사람들이 있다. 육아라든가 돈문제라든가 불륜이라는가 그런 특수한 조건이 끼지 않더라도 그냥 근본적으로 맞지 않은 느낌. 밖에서는 사람 좋다는 평가를 듣는 존재감 없이 사는 우리 둘이, 집에만 오면 사소한 일로도 늘 대차게 싸워대고 살벌해지는 요상망측한 사이. 왜 십자 나사에 십자드라이버처럼 찰떡같이 맞진 않더라도, 일자드라이버를 맞춰 끼 어찌어찌 굴러 돌아가는 사이도 아니고. 이건 뭐 일자 나사에 십자드라이버의 조합처럼 들어가는 게 아예 불가능한 그런 느낌말이다.


여튼 그런 지지멸렬한 다툼의 시간을 헤치고 우리는 15여 년을 함께 살아왔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일지도 모르고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왔다.

그 세월을 쪼글쪼글해진 얼굴에서 확인한 어느 날, 평생을 사랑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내가 불쌍했고  같이 살면서 미워밖에 못하는 우리의 관계가 딱했다.


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연말, 아이들 크리스마스선물을 사고 있는 내게, 그가 철딱서니없게시리 지갑을 사달라고 했다.

직원들 다 있는데 다른 팀장이 놀렸어 웬만하면 지갑 좀 바꾸래. 생일 선물로 하나 사줘.

내 생일도 안 챙겨주면서 나보고 뭘 사달래

난 사줬잖아 반지 목걸이 시계

예물을 말하는 거였다. 이 인간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라고 대꾸할라다 말았다. 그가 내민 쓰던 지갑은 전에 사무실에서 내가 받은 선장품이었다. 팀장씩이나 되가지고 불쌍하다 싶었다. 랑은 아니지만서도 특하게도 내겐 연민이 남아있었다.

남편선물 사러 백화점 갈 기운은 없지만, 인터넷 쇼핑몰이야 늘상 열어 놓으니 그중에 골라보면 될 듯 했다. 전에 사준 것은 엠씨엠 지갑이었다. 30 대니 그 정도면 무난했을 것 같은데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바깥양반에게 고 브랜드는 좀 젊은 느낌인가 싶었다. 보다 보니 20만 원을 생각했던 지갑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고 검색을 하면 할수록 신기하게 알고리즘은 지갑 가격을 야금야금 올려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보테가 베네타 머니클립. 돈을 넣는 공간이 없이 돈은 클립 부분에 끼우고 주로 카드 수납을 하는 용도의 지갑이었다. 전에도 머니클립을 남편이 잘 썼던 기억이 난데다, 부피 작고, 지갑보다 몇만 원 싼 것도 맘에 쏙 들었다.

내 지갑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4만 원 주고 샀는데, 44만 원짜리 지갑을 살려니 영 떨렸다. 나는 그 흔한 루이비통도 버버리도 없다고. 에이 모르겠다. 누가 그런 걸 메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보테가 베네타는 샤넬 급이란다. 그래 내가 선심 쓴다. 당신은 내게 샤넬 가방을 안 사주겠지만 나는 샤넬급 지갑을 쏜 거야~

며칠 후 배송이 왔다.

자 선물

생일보단 좀 일렀지만, 좀 신나 있었다. 얼른 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뭐야 이게
지갑

보테가베네타도 모르는 무식쟁이인 이 양반은 뜯으면 교환불가라는 텍을 북북 찢더니 머니클립은 싫다고 한다. 불편하단다.

그럼 텍을 떼지 말아야지. 그래야 교환을 하지?
그래? 어떡하지? 비싼 거야?
보테가베네타 몰라? 샤넬급이라고!!!

그제야 앞뒤로 훑어본다.

그냥 써야겠네 그럼. 근데 생일날 짠 하고 줘야지 이렇게나 빨리 주면 어쩌냐?

쇼핑몰 반품기간 있어서 미리 보여준 거야. 와 진짜. 내가 다신 선물 사나 봐.

관계의  변화는 항상 내가 먼저라길래, 남은 연민을 짜고 짜냈더랬다. 닭살 돋는 애교도 못하겠고 맘에 없는 말도 못 하는 내가 12개월 할부로 산 명품지갑으로 터진 만두 같던 우리 사이를 여미고 여며보려 했건만.  우린 정말 안 맞는 인간종이 었던 거다. 이 십자 라이버 같은 양반아 십자 나사를 찾아 떠나라 제발. 이번 생에는 알콩달콩 부부관계는 포기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카톡이 왔다.

지갑 고마워. 잘 쓸게

뭐지? 이 양반. 한참을 봤다. 진작 저렇게 말하면 좀 좋아. 왜 꼭 투덜투덜을 시전 해야 하는 걸까.  정상적인 반응을 하루라는 숙고의 과정과 카톡이라는 간접매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불쌍한 인간. 연민이 한 줄 더 생겼다.

그래  생일 축하해

 날실과 씨실을 엮은 모양으로 생긴 내 첫 명품 지갑은 내 것이 아니었으나 모양은 내 마음과 같았다. 행복하지만은 않은 십수 년을 함께한 징글징글 함, 남들은 모르게 나한테만 쏟아내는 교양 없는 말들에 대한 억울함, 집에서만 시전 하는 잔소리에 대한 지긋지긋함, 그 와중에 밖에서는 멀쩡한 척하며 고단하게 사는 데에 대한 연민, 애들을 우리와는 다르게 키워보겠다는 몸부림에 대한 깊은 공감.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한줄한줄 엮어 이제는 쉬이 끊어지기 힘든,  깥양반에 대한, 런 뭐 설명하기 힘든 내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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