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개시 (萬事開始) 서안

서안 종루에서

by 마담 D


아무래도 좆됐다.


순간 마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Excuse me, I want to buy a ticket to the city centre. And would you mind explaining how to get here?"

(실례합니다. 시내로 가는 티켓을 사고 싶어요. 그리고 이곳까지 어떻게 가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핸드폰에 미리 복사해 놓은 주소를 가리킨 내 손가락을 보던 버스 창구 직원이 방긋 웃었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문제는 그가 내뱉는 말을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는 나에게 있었다. 화성에 온 것도 아닌데!


"Sorry, I don't understand Chinese."

(죄송한데 중국말을 몰라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창구 직원이 입을 합- 다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동료들에게 무어라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상식은 있었다. 하지만 설마 하니 공항에서, 그것도 버스 창구에서 문제가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카드부터 살걸. 아니지, 통신사라고 영어가 통할 리가...'


번역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심카드 없이는 핸드폰도 먹통이었다. 등 뒤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매달린 커다란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 모자 아래로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창구 직원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괜히 뒤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나는 괜히 짜증스럽게 씨근거렸다. 아무런 대책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온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국제공항에 일하는 직원들인데 영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고 태평했던 내 성격이 문제였다.


'중국어를 배워. 누구네 아들은 그걸로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더라.'


누구누구네 자식 자랑을 전달하던 아버지의 무관심한 말이 순간 머리를 스친다. 그 말에 내가 뭐라 대꾸했었지? 괜한 청개구리 심보가 되어 중국어는 관심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줄 알았으면 못 이긴 척 그 말을 들을 걸 그랬나, 하는 괜한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창구 직원은 어렵게나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올 수 있었다. 쏘는 말투를 가진 여성 안내원은 친절하진 않아도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겨우 그렇게 티켓을 사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낡았고, 오래 찌든 담배냄새가 났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대충 닦아냈다. 사람이 가득 찬 버스가 천천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창 밖으로는 한자로 쓰인 표지판을 제외하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속도로가 펼쳐졌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고작 4시간 남짓되는 비행이었지만 괜히 고됐다.


왜 하필 중국이었을까? 그 많고 많은 나라들 중 말도 안 통하고 인터넷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불편한 나라로 오길 결정했을까? 그렇게 자책 아닌 자책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둥근 얼굴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얄밉게도.


'이게 다 L 때문이야.'


연락도 되지 않는 친구가 괜히 원망스러워졌다.




'나 떠날 거야.'


이따금 술이 들어가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떠날 거야. 이 지긋지긋한 쳇바퀴를 벗어나겠어. 대학교 때 처음으로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 나는 항상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 저 먼 해외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거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L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한 번 해봐. 그게 얼마나 힘든지 겪어봐야 알지. 내가 중국에 있었을 때...'


L은 종종 술자리에서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때 2년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온 그로서는 해외생활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경험이었다.


'야, 말도 마. 내가 얼마나 악착같이 버텼는데.'


서예를 전공한 L에게 중국은 배움의 성지였다. 하고자 하는 일에 끈기가 강한 L은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낯선 도시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2년 동안 귀국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라는 나의 물음에 L은 이렇게 답했다.


'한 번 오면 다시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리고 쓰디쓴 소주 한 잔을 넘긴다. 연수 초기에는 중국어를 할 줄 몰라 고생했고,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L에게도 중국 생활에서 남은 좋은 추억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호도협의 백숙'이었다.


'야, 진짜 맛있어. 내가 그런 백숙은 처음 먹어봤다니까?'


'물에 빠진 닭이 거기서 거기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다고?'


'아니야. 차원이 달라, 진짜.'


그 대단한 백숙을 먹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산을 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백숙이 정말 극찬할 만큼 맛있는 건지, 아니면 고된 산행이라는 노동이 가져온 착각인지.


그래서 직접 중국을 가보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중국을 떠나온 지금, L과 나의 사이는 멀어져 있었다. 작은 감정싸움이 원인이었고 그걸 계기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중국으로 떠나온 건,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온 지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다툼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다시 서로를 찾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로 지금 우리의 싸움은 예민한 시기에 일어난 일시적인 휴식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L을 만난다면 나는 드디어 중국을 다녀왔다고 큰 소리를 칠 생각이었다. 네가 입이 닳도록 말하던 호도협의 백숙을 먹어 봤노라고. 그렇게 다시 우리 사이가 이어 붙을 계기가 된다면 좋을 거라 바랬다.


나는 중국에 왔다. L이 말한 중국을 내 온 감각으로 직접 느껴보고자.


그리고 처음 내 피부에 닿는 중국은 가까운 듯 낯설었다.






거대한 종루의 모습이 눈에 보였을 때,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안도였다.


서안의 중심을 차지한 대단한 구조물을 보고도 격한 감동이 아닌 안도라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조금만 더 가면 숙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서안을 대표하는 건축물보다 훨씬 더 벅찼다.


나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지하철역을 벗어났다. 내 등 뒤에는 23kg이나 되는 거대한 배낭이 등딱지처럼 매달려 있다. 7kg짜리 보조 배낭이 앞에 달려있고 중요한 물건들을 넣어 놓은 사이드 가방도 차고 있다. 내 몸집보다 더 커다란 짐들에 어깨가 천근만근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싶다. 그 순간 나의 열망은 그것뿐이었다.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할 수 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걸었다. 종루를 지나쳐 작은 골목으로 향했다.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그 짧은 거리가 그렇게 길어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숙소의 문을 열었을 때,


"Welcome to Xian!"

(서안에 온 걸 환영해!)


카운터 직원의 단순한 환영 인사가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나는 등 뒤의 짐을 내렸다. 그리고 허리를 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숙소는 잘 관리한 오래된 건물이었다. 로비에는 식당과 바가 있었고 침실은 위층이었다. 직원은 예약확인 후 키를 건네주었다. 간단한 호스텔 구조를 설명한 후 그는 저녁에 무료 훠궈 파티가 있다며 꼭 참석하라고 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8인 도미토리는 꽤 넓었다. 양쪽으로 2층 침대 4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짐을 질질 끌어 내가 잘 침대 옆에 놓았다. 숨을 돌리려는데 맞은편 위쪽 침대에 이불이 들썩거렸다. 곧이어 이불 사이로 얼굴 하나가 쏙 나와 나를 보았다.


"Hi, good to see you. I'm A, from Brazil."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A야. 브라질에서 왔어.)


"Hey, my name is D. I'm from Korea."

(안녕, 내 이름은 D야. 한국에서 왔어.)


고개를 빼꼼 내민 A는 느리게 몸을 반쯤 일으켰다. 부스스한 검은 머리를 쓸어 올리자 볕에 그을린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A는 멋쩍게 웃었다.


"매너 좀 봐, 미안. 오늘 엄청 걸었거든. 너무 피곤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난 그냥 숙소에 와서 엄청 기쁠 뿐이거든."


"I bet you are!"

(그럴 만 해!)


A는 내 거대한 배낭을 보고 깔깔 웃었다. 그 웃음을 따라 나도 웃었다. 누군가와 말이 통하는 대화를 하니 아까까지의 긴장감이 사르르 풀렸다.


"정말,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랑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뻐. 여기서 아무도 영어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 못했거든."


"하하, 알아. 그래도 금방 익숙해질 거야."


"중국에 한 달 있을 계획인데 앞으로가 걱정돼."


"Oh, dear. 걱정하지 마. 중국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착하고 친절하거든. 내 말 믿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거니까."


5일째 서안에 머무르고 있는 A의 말에 나는 가슴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걱정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A와의 짧은 대화 후 나는 엄마와 몇몇 친구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핸드폰의 시간이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Are you going out?"

(나갈 거야?)


어느새 다시 자리에 누운 A가 반쯤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응. 어두워지기 전에는 돌아올게. 오늘 훠궈 파티 한다던데, 너도 올 거야?"


"Hmmm. Not sure.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지금은 그냥 자고 싶어."


"알았어. 더 자."


"Thanks girl. Good luck!"


A는 짧은 인사를 뒤로 하고 다시 이불 아래로 숨어버렸다. 나는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새삼 낯선 거리였다. 아까는 등 뒤의 짐에 온 신경이 쏟아져 잘 보지 못했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읽을 수 없는 간판들, 그리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두렵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유심을 사야 하니까 통신사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니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A처럼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아갈 수도 있어.'


엄마는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다. 도착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한국으로 다시 귀국한다면 여러모로 체면이 구겨지겠지만, 지금 당장 대면한 문제 앞에서 남의 시선이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문제는 지금 발을 돌린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쳇바퀴 안으로 들어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것이다. 열정도 없는 일을 하고, 스트레스에 술을 마시고, 지나간 것들을 원망하는. 허송세월을 보내며 인생을 낭비할 것이다.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전진, 아니면 후진.


숨을 크게 들이켜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두 번째 발걸음을 디딜 땐 편하게 날숨을 내쉰다. A의 말을 상기했다.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타이르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기분 탓일까? 그저 담배 냄새와 매연으로 칙칙했던 공기가 나름 특색 있다고 느껴졌다. 뿌연 하늘이 서울 못지않게 맑은 것 같기도 했다. 한적한 거리에서 일상을 보내는 낯선 사람들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날, 나는 유심을 사지 못했다.





01-1.png


수, 일 연재
이전 03화만사개시 (萬事開始) 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