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삶이 지루해져서 인생을 멋지게 망쳐 보기로 했다.
<2017. 10. 14 인스타그램에 남긴 말>
메마른 샌드위치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잠이 낀 눈이 피로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비행기 하나가 휘융- 날아가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이 눈 부셨다. 여행 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인천 공항 대기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면세점에서 산 물건들을 가득 담은 쇼픽백을 든 사람들과 떠나기 전 작별인사라도 하듯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생기 도는 밝은 얼굴들 사이에 어쩐지 나만 텅 비어버린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나기로 계획한 건 3년 전이었다. 세상을 돌아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꼭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그 사이에 이 여행의 의미는 많이 바뀌어 버렸다.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함께 살던 동생들과는 멀어져 갔다. 엄마를 따라 거의 평생을 머물렀던 동네를 떠났다. 한 때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은 5년이 지나자 매너리즘만 남았다. 가장 친한 친구와 크게 싸우고 연락을 끊었다. 나는 예민해졌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안정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랬던 삶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비를 막아줄 지붕도, 발 디딜 고른 땅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놓였다.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 고결한 자존심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웃음 아래에 상처를 감춘다. 침묵하며 고통을 삼켜냈다.
내 안에 쌓이는 독이 점점 내 숨통을 졸랐다.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샀다. 여행을 결심한 이후 처음으로 실행에 옮긴 일이었다. 그 이후 지난 1년 동안,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여정은 현실 외면을 위한 도주로가 되었다.
이 변질은 언제 시작되었나?
'그날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귓불에 박혀 있는 동그란 그것이 괜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역시 귀걸이를 빼놓을 걸 그랬어.'
뺨을 몇 대 후려쳐 맞고 바닥에 나동그라졌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건 피에 젖은 작은 귀걸이들이었다. 좋아하던 디자인이었는데. 더러운 핏자국에 오염된 그것들을 한동안은 피하게 될 것이다. 바닥에서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웅웅 머리가 울렸다. 귀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1, 1, 2, 처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단 한 번 눌러본 적 없는 어색한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곧 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나는 문을 닫고 초조하게 작은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우습게도 문 밖에서는 티브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주말의 어느 저녁처럼, 아버지는 티브이를 보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를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를 가족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
'네가 인간이 되어야 주지!'
올려 부친 뺨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찌르던 말이 먹먹한 고막에 웅웅 울렸다.
오만한 그 어투가 마치 고귀한 신의 판결문 같았다. 몸이 부르르 절로 떨려왔다.
그 말을 들을 만큼 잘못한 게 뭐였을까? 애초에 이 싸움의 원인이 무엇이었지? 돈? 아니면 자존심?
처음은 생활비가 문제였다. 늘 엄마한테 보내왔던 생활비가 갑자기 문제가 되었다. 한 번 억양이 높아지자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생활비 문제는 어느새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딸이라는 힐난으로 이어졌다. 나도 이에 질 세라 그러는 아버지도 똑같다며 학자금 대출 이야기를 꺼냈다. 졸업 후에는 내 이름으로 받은 그 대출을 꼭 갚아주겠다고 했던 오래전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으니까.
그걸 정말 받아낼 생각은 없었다. 내 밑으로는 대학생 동생이 둘이었다. 그래서 군말 없이 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열심히 갚아 나가고 있었다. 단언컨대 그걸 아버지에게 받아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 그 건 그저 아버지의 무작위로 쏟아내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한다. 인간이 돼야 주지.
그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누구에게 내놓을 만큼 자랑스러운 딸은 아니었다. 나는 이름도 없는 서울에서 먼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저 그런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성실하게 살았다. 내 이름 앞에 달린 그 무거운 빚을 갚는 와중에도 생활비를 부쳤다. 거기에 아버지가 부탁하는 건 군말 없이 사다 바쳤다.
그랬는 데도 아버지는 나를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필요 없어. 그깟 돈 더러워서 안 받고 말지.'
찔린 속에 자존심이 먼저 뻗대며 뱉은 말에 억센 손이 날라 들어왔다.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에는 나와 아버지 둘 뿐이었다. 그 순간 나를 지켜줄 최소한의 방어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었다.
짧지 않은 시간에 경찰이 도착했다. 하지만 으레 여느 가정 폭력이 그러하듯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간단한 조사 과정에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내 신경은 온전히 거실에 있는 아버지의 음성에 쏠려 있었다.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덜덜 떨고 있는 나와 달리 아버지의 음성은 차분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질의 후 경찰은 어떻게 하길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간단하게 필요한 것들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경찰과 함께 나가는 나를 향해 아버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길로 나는 친구 H네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H를 보자마자 나는 내내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처럼 우는 나를 H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신혼집인데도 불구하고 H는 스스럼없이 내게 방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 밤, H와 그의 남편과 함께 소주 몇 병과 눈물 한 바가지로 상처를 씻어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너도 아버지를 이해해야지.]
그 첫 한 줄을 읽고는 카톡을 지워버렸다. 평생을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미안하다. 그런 아버지의 첫 사과는 내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이혼하기까지 몇 번의 더 부딪힘이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한 때 가족이었지만 이제는 얼굴조차 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 길에서 스쳐가는 타인만도 못한 사람이 되었다. 그 빈자리에 남은 건 여러 겹 덧입힌 상처뿐이었다.
불쾌한 기억이 끼어 버린 탓일까, 눈꺼풀이 무거웠다. 차라리 얼른 보딩을 하고 잠을 자고 싶었다.
집채만 한 가방을 메고 엄마의 마중을 받으며 집을 나설 때까지도 나는 내가 정말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을 실감할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부랴부랴 탑승수속을 한 그 일련의 과정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지금 대기실에 앉아 있는 지금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아침에 날 배웅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시아나 항공 OZ347편 시안행 탑승을 시작합니다.]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계적으로 일어난 나는 다른 탑승자들과 함께 줄을 섰다. 승무원에게 티켓을 내밀고 비행기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조금씩 떠난다는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들뜨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평소보다 더 차분했다.
그렇게 일생일대의 도주가 시작되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떴다. 미친 듯이 맑은 하늘이 나를 온몸으로 품었다. 어서 오라고 반겨주는 것 같기도 하고,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로 떠나기 딱 좋은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