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중국 야딩 풍경구의 어느 설산에서.

by 마담 D




저 산을 오를 거야. 저 산 꼭대기에 있는 호수를 보고야 말겠어.


그렇게 다짐하고 시작한 산행이었다.


이미 등정 초입부터 내리기 시작한 싸라기눈은 어느새 거센 눈보라가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 눈앞은 하얀 지옥이었다. 발아래로 눈이 녹은 물줄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미끄러운 돌들이 가득한 길 위로 바람은 나를 때리며 걸음을 멈출 걸 종용했다. 좁은 길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였고 젖은 바지 속 내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코가 얼었다. 춥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자칫 발이 미끄러져 구른다면 이대로 삼도천을 건너게 될 테지. 아무도 내 시신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말조차 통하지 않는 타인들이었으니. 나는 외지인, 오롯이 혼자였다.


이대로 실종되고 만다면 한국에서 오매불망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는 어떻게 할까? 내 시체를 찾겠다고 저 험한 산속을 뒤지고 말지도 모르지. 내 동생들은? 그 착한 애들은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나를 원망하지도 않을 지도.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도망간 주제에 목숨을 걸고 산행을 하고 있다니. 그것도 고작 호수 따위를 보자고!’


하지만 그때마다 귀청을 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이지. 뭐 하나 말 한 대로 하는 일이 없어!’


시간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 속에 들어 올려진 손이 선연했다. 그 거친 손이 저 찬 바람보다 더 매섭게 나를 내리쳤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속박되어 있다. 그도 그럴게 평생을 내가 아닌 그의 의지에 따라 살아왔었다. 십 대는 그 말을 따르며 살았고 이십 대는 그 말에 반항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앞에 희뿌연 풍경처럼 나 자신도 흐릿해져 있었다.


그러니 이 눈보라 속에서 혼자 사천 미터가 넘는 저 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고집이 내 의지였는지 아니면 그저 귓등을 치는 저 목소리를 이겨보겠다는 미련한 오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걸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내 바보 같은 믿음. 왠지 저 정상 위에 올라가게 되면 모든 과거의 상처들을 이겨내고 가볍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이 산을 오를 거야. 그 대단하다는 멋진 호수를 보고 말겠어. 그다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을 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지. 내가 저 높고 멋진 산을 정복했다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쓸 거야. 유명 작가들의 여행기처럼 말이야. 그리고 바닥을 찍어버린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다시 도약한 멋진 사람으로 이름을 남길 거야.’


하나 내 거대한 야망과는 다르게 내 발걸음은 소심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고작 산 하나 오르는 걸로는 유명 작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들은 그 고행의 끝에서 자신을 찾았지만 나는, 이 길 위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른이 되기 전 막바지 이십 대에 집에서 도망가버린 일개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일 뿐이지.


결국 내 이러한 의지는 몰아치는 눈보라에 쉽게 꺾여 버리고 말았다. 점점 주변 나무의 눈높이가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정상 근처로 가자 풀뿌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잡을 것이 없자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바닥에 몸을 굽히고 옆에 있는 키 작은 바위를 움켜 잡았다. 손 끝이 아렸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공포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온몸을 발발 떠는 와중에도 눈물이 차 올랐다. 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조금도 순탄하게 흘러가 주지 않을까? 눈발 사이로 정상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아 의지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척 서러워졌다.


내게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면.


하지만 나는 혼자야. 게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위를 올라갈 정도로 독하지도 않지.


나는 체념했다. 언제나처럼 고지를 코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어쩔 수 없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 나를 타일렀지만 분했다. 나를 힐난하던 그 말이 맞는 것만 같아서.


나는 도대체 뭘 바꿔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걸까?


하지만 날씨는 나를 그런 감상에 젖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미끄러운 돌길을 따라 비탈을 내려왔다. 무릎을 굽히고 거의 기다시피.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계곡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헉-헉- 긴장 속에서 내 밭은 숨소리만 귓가에 가득 맴돈다.


그리고 한 순간 발이 훅- 하고 미끄러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하는 감탄사도 나오지 않았다. 시야가 좁아졌다. 몸이 기울어졌다. 시간을 늘려놓은 듯 찰나의 순간이 느리게 눈앞에 흘러갔다. 머릿속은 이미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턱- 하고 몸이 멈췄다.


누군가의 억센 손이 내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등 뒤로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말이 들려왔다. 어느 한 중년의 중국인이 내 목덜미를 꾹 잡고 있었다. 그 힘에 다시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있었다. 그 낯선 이는 내가 몸의 중심을 다시 잡았는데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연신 땡큐를 중얼거리며 그 손에 의지한 채 발을 옮겼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건지 앞에서 걷던 다른 중국인 중년 여성은 앞에서 내가 잘 내려오는지 돌아보며 간간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낯선 중국인들은 위험한 길을 벗어나 조금 안전한 제대로 갈 때까지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가면서 휘적휘적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땡큐, 셰셰, 바이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인의 손길이 이렇게 의지가 될 줄이야. 날은 찬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의 미소가 뱃속을 따뜻하게 데우며 차갑게 식은 온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정말 혼자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홀로 떠나왔지만 떠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내 인생도 그랬다. 내가 힘들 때면 쉼터를 내어주고 위로를 건네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겪어보고도, 나는 참 멍청하기 짝이 없어.’


맹목적으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부족해서 스스로를 부끄럽다 여겼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제멋대로 엇나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걸.


그리고 저 이름 모를 중국인의 친절 한 번으로 다시금 깨닫고 마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돼.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아.


혼자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긴장이 풀리자 그 뒤로 내려가는 길은 쉬웠다. 여전히 눈은 쉼 없이 내렸지만 어쩐지 흐리고 보이지 않던 앞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 서서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발아래가 아닌 더 먼 길 너머를 바라보았다.


숨 쉬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세상을 돌아보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였으면 좋았겠지만 내 여행의 시작은 도피에 가까웠다. 스물여덟 해 동안 안전하다고 느꼈던 모든 삶의 지반이 무너졌다. 그렇게 궁지에 몰리자 이에 정면으로 맞설 힘도 나지 않아 냅다 줄행랑을 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내 삶을 포기하고 싶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살고 싶어서, 그래서 도망갔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 과거의 잔상이 나를 붙잡을 때마다 다시 목이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숨 쉬기 위해서 더 멀리 도망가도 그 과거의 족쇄들은 내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망령처럼 내 뒤를 바싹 쫓아왔다.


‘조금 쉴 곳을 찾자. 잠시 다 잊은 채로 힘을 비축하고 나서 그때야말로 맞서 싸우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방황을 하다가 이 중국 외지의 설산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죽음의 경계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건져지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그저 하산을 하기로 했다. 느리지만 신중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산행을 시작했던 자리에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하얗게 눈 덮인 산에 내가 이루지 못했던 정상을. 구름으로 가려져 이제는 보이지 조차 않는 그곳을 보다가 돌아섰다. 미련 없이.


휘휘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걸었다. 젖은 옷으로 온몸에 떨려 왔는데 이상하게 가슴속이 뜨거웠다.


나는 그제야, 편하게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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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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