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개시 (萬事開始) 서안

병마용갱

by 마담 D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진시황은 중국 대륙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라는 이름 외에도 많은 것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병마용갱이다.


중국에 오는 건 처음이었지만 병마용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엄마 손을 잡고 특별 전시를 보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병정들을 보았다. 토기 병정들을 보며 넋을 놓았던 어린 날의 기억과 감동을 따라 나는 오늘, 병마용갱에 왔다.


어제 고생이 무색하게도,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친절한 통신사 직원을 만나 유심을 살 수 있었고 서안역에서 병마용갱까지 가는 버스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다. 여전히 몸은 긴장으로 바짝 얼어 있었지만 걸음걸이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진시황을 지키는 거대한 토기 병정들이 있다는 병마용갱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발굴된 토기들을 전시하는 거대한 박물관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세 개의 갱도가 있었다. 이 세 개의 갱도조차 아직 다 발굴하지 못했는데, 더 많은 갱도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황제라는 칭호를 단 진시황이 죽어서 누리는 규모가 이 정도인데 살아서는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을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박물관 안, 각기 다른 모양의 병정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나는 노스탤지어에 흠뻑 젖어들었다. 나는 어쩐지 어릴 적 그날, 동생들과 함께 박물관을 돌아다니던 어린 그 시절로 회귀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 없이 나 홀로인 지금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그때는 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던 갱도의 실물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서있었다. 깊이 파진 구덩이 아래, 수많은 병정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사진 많이 찍어서 보여 줘야겠다.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곁에 없는 동생들을 위해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렌즈로는 내가 느끼는 감격이 담기지 않을 것 같아 동영상도 찍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면서도 그 애들에게 과연 이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해 엄마와 친구들, 심지어 대학 후배에게까지 안부를 전했지만 동생들에게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떨어져 살게 되면서 우리 사이에 있던 고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출국을 하기 전, 얼굴을 보고 식사를 한 것도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 속, 두 손에 쥐었던 그 애들의 손이 그저 한낮의 허상 같았다.


철들기 전 우리는 언제나 삼총사처럼 붙어 다녔다. 나는 그 애들의 대장이었다. 둘째는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나도! 를 외쳤고, 막내는 나도지! 를 외치며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랬던 게 무색하게 우리는 클수록 점점 멀어져 갔다. 간간히 근황을 묻고, 티브이를 보면서 같이 웃기도 했지만, 그 얄팍한 대화마저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무심해져 버렸는가? 왜 나는 그 애들에게 그토록 무관심했나?

어쩌다가 한 때 끈끈했던 형제는 이렇게나 서로 분열되어 버렸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동생들이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시절에는 이 관계가 커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세월에 얽힌 경험들은 이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영원한 권력을 쥐고자 불로불사를 꿈꾸던 진시황이 결국 이 많은 토기 병정들과 함께 땅 아래로 묻힌 것만 봐도.


누구도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서서도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야 했다. 그렇게 황제는 영원이라는 허황된 이상을 좇으며 미신을 맹신하는 암군이 되어갔다.


자신의 사후 세계를 지키기 위해 흙으로 빚은 병사들,


병마용은 결국, 진시황의 공포가 빚은 형상이다.


진시황에게 폭력은 대륙을 제패하고 권력을 쥐는 수단이었다. 그 대가로 불안한 삶에서 오는 공포에 젖은 말년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심적 고통은 후세대에 이런 거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진시황은 아버지였다. 아버지 또한 폭력을 수단으로 집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켰다.


[어른을 알고, 자신을 알라.]


초등학교 4학년, 서예 학원을 다녔던 내게 아버지가 써달라 부탁한 말이었다. 뜻조차 알지 못하는 그 문장이 우리 집 가훈이라는 건 그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걸 액자에 넣어 자랑스럽게 거실 한가운데에 걸어 두었다. 집에 오면 보이는 그 액자를 볼 때마다 나는 구역질이 났다.


말 그대로 우리는 아버지를 통해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집의 절대적 지배자인 아버지는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에 폭력을 저질렀다. 단순한 육체적인 폭력뿐이 아니었다. 말과 분위기로 만들어지는 정신적인 통제도 따라왔다. 그리고 그 훈육은 대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목적에 치중되었다.


늘 현관에 놓았던 신발주머니를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채가 잡혀 던져졌다.


젓가락질이 이상하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 꼬박 밥을 굶었다.


외국 제품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둘째는 뺨을 맞았다.


막내의 진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오 밤중에 고성이 터졌다.


가구가 부서지고, 물건이 날아다녔다.


부모님은 종종 싸웠다. 다행히 엄마에게는 육체적 폭력이 가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폭언과 통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억양이 조금 격해진다 싶을 때에나 끼어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 분풀이 대상은 우리에게 옮겨 가기도 했다. 우리는 대개 신중했고, 많은 순간 침묵했다.


우습게도 아버지의 폭력은 우리를 지배하는데 실패했다. 크면서 아버지를 다루는 방법을 익혀갔을 뿐이다.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감정표현이 적어졌고 비밀이 많아졌다. 그렇게 침묵할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아주 무관심 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서로에게 최소한의 방어선이 되어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동시에 정말 최악이 아니라면 나서지도 않았다. 괜히 끼어들어 일이 커지면 더 고통을 받는 건 당사자였기에,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게 최선인 개인주의자가 되어갔다.


'아마 아버지의 삶에 유산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되지는 않겠지.'


진시황의 폭력은 유산을 남겼다. 아버지가 남길 유산은 무엇일까? 부모의 유산은 자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아버지의 유산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폭력으로 얻은 건 스스로에게 벽을 쌓아 자신을 숨기는 아이들이었다.


'적어도 나는 아닐 테니까.'


태어난 순간부터 오점이었고, 마지막 언쟁 이후 아예 인연을 끊어버린 나는 결코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없을 테다. 이 여행의 원인에 아버지의 몫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 끝에 무엇이 남는다면 그건 온전한 나의 것이다.


진시황이라는 불사의 이름처럼 역사에 남지는 않겠지.


하지만 적어도 엄마와 동생들에게 전해질 내 부끄러운 고백은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서로에게 세운 벽을 무너뜨리고 이 여정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지 않을까? 동생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속을 터놓을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나는 병마용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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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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