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내일 화산에 간다고?"
첫날의 훠궈파티에 이어 둘째 날 이어진 바비큐 파티에서 A와 합석하게 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바비큐 그릴과 여러 꼬치들이 올라왔다. 어제 훠궈 파티와 똑같은 꼬치였지만 맥주 안줏거리로는 충분했다.
A는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며 영국인 남자 둘을 소개해 주었다. 술이 올라 발갛게 달은 얼굴로 A가 다음날 일정을 물었다. 화산에 갈 거라고 이야기하자 옆에 있던 영국인 남자가 아는 척을 해왔다.
"엄청 힘들다던데, 등산 좋아해?"
"아니, 별로 좋아하진 않아."
"근데 왜 화산을 가려고 해?"
"엄마가 예전에 갔다 왔었는데, 꼭 가보라고 했거든."
서안에 온 이유를 굳이 꼽자면, 엄마가 말한 그 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부모님은 회사 사람들과 부부동반으로 해외를 자주 다녀오곤 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중국 서안의 화산이었다. 내가 서안을 간다고 하니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하며,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한국에서 산 탈 때는 설악산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북한을 다녀와보니 금강산이 제일이었고, 그러다가 중국을 가보니 화산이 제일 멋있더라고!'
이혼 이후에 아버지와 좋았었던 장소를 굳이 언급하는 엄마가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추천을 받아 가는 곳임에도 막상 갈 생각을 하니 영 망설여졌다.
물론, 이런 속사정을 처음 보는 영국인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엄마가 보기에 멋있었다는 말에 그는 쉽게 납득했다. 술에 탄 대화는 금세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맥주 두 잔에 알딸딸한 가벼운 시간을 즐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피로와 취기를 배게 삼아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숙소를 벗어났다. 화산을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종루 근처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의사소통은 쥐약이었지만, 주변 도움으로 어렵게나마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음악을 들으며 화산에 오른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당시의 사진은 여전히 내 외장하드 속에 남아 있었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그때의 모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은 지저분한 감정의 찌꺼기만 남은 관계에도 좋은 추억들은 존재했다. 그런 기억들이 문득 스칠 때면 나는 이를 그냥 외면해 버리곤 했다.
엄마처럼 대담하게 그날들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서.
기차 시간이 되었다. 담담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향해 발을 디뎠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어.'
괜히 중국의 오악산 중 하나라 불리는 화산이 아니었다.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다른 봉우리로 가는 제법 쉬운 코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은 내게 호락호락하게 편한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길에는 나무보다 사람이 더 빽빽했다. 좁은 산길에서 앞에 가는 사람을 쫓아가며 나는 연신 헉헉거렸다.
그런데 앞에 가는 젊은 여자가 신은 게, 등산화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하이힐이었다! 나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걸 신고 산행을 하지? 그것도 모자라 산비탈에 위태롭게 서서 사진까지 찍어댄다.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했다.
'저 여자도 그렇지만 아니, 엄마는 어떻게 여기를 돌아다닌 거야?'
물론 엄마는 나와 달리 등산을 즐겨하긴 했다. 처녀 때는 등산 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결혼하고도 아버지와 함께 줄곧 산을 오르고 다녔다. 반면 나는 등산을 즐기지 않았다. 산 근처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걸 좋아하기야 했지만, 산에 오르는 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순전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의 추억 속 그 대단하다는 산을 직접 보고 싶어서.
허나, 막상 오니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쓴 교통비와 입장료를 생각하면 아까웠다. 치마를 입고 구드를 신은 채 산을 오르는 저 가녀린 여자들도 있는데, 등산화까지 야무지게 신고 온 나라고 못할 건 뭐람? 괜한 오기만 차서 나는 이를 꽉 물고 다시 높은 바위에 좁고 엉성한 계단을 밟았다.
바위 위 쪽에 표지판이 보였다.
목적지인 서봉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화산은 동서남북 네 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서봉과 북봉에 케이블카가 있다. 나는 북봉에서 서봉으로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선택했다는 말은 조금 어패가 있긴 하다. 그냥 가다 보니 북봉이었고 사람들을 따라 서봉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날씨가 좋다는 점이었다. 가을이라 조금 쌀쌀한 감이 있기는 했어도 해가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와 같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좁은 돌계단을 오르고 난간을 잡아가며 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 좁은 길에서 사람들과 엉겨서 걷고 있는데 유독 익숙한 차림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화려한 색의 등산복, 바로 한국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부부동반 패키지여행인 모양인지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중년남녀들이 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올수록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고국을 떠난 지 고작 3일째인데 한국말을 듣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길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일부러 자리를 비켜섰다. 그러자 아주머니들이 셰셰, 하고 감사를 표했다.
"괜찮아요."
나는 그 말에 한국어로 답을 했다. 아주머니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보았다. 한국인일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어머, 한국 사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쩐지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니!"
너스레를 떠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들이 지나친 길을 다시 걸었다. 뒤에서 힘내요, 하고 외치는 날에 나도 파이팅! 을 외친다. 아까까지 묵직했던 발걸음이 어째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쉼터에서 나는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응원을 해주던 아주머니들이 떠올랐다.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니 오래전 엄마도 저렇게 산행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속 엄마의 미소가 다시 떠오른다. 그 옆 자리에 있던 아버지의 모습도.
우리에게 안 좋은 기억들만 남았다면, 헤어짐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게 큰 타격을 입히지도 않았을 거고, 마지막으로 싸웠던 아버지의 모습을 극복하기 더 쉬웠을 거다.
하지만, 내게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밤낚시를 갔던 적도 있고, 부산에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포클레인을 타보기도 하고, 할아버지 산소에서 진달래를 따다가 길을 잃기도 했으며, 여름이면 시골에서 함께 물놀이를 즐겼었다. 엄마가 이 화산에 묻어 놓은 추억들처럼, 나에게도 그런 아버지와의 좋은 날들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은, 아주 예쁘게 잘 포장된 선물 바구니 같았다. 다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꽁꽁 감춰져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그저 '좋았다'는 말로 뭉뚱그려 말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아질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걷는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다행히 산행은 그저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면 높은 바위 산등성이가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무협지에서 도사들이 구름을 타고 다닐 것만 같았다. 도교사원도 있었다. 도교에 도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거닐면서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르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러고 나니 어쩌면 내가 하는 이 고민이 아주 의미 없는 짓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삶을 등산에 비유하곤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아버지와 함께한 지난 삶도 그랬다. 좋은 일이 있지만 나쁜 일도 있었다.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을 잘라 지워낼 수는 없다. 지금 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다고 해서 한 때 아버지와 함께 웃었던 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한 장의 사진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장장 세 시간의 산행 끝에 서봉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셀카를 찍었다. 지쳐서 웃음기 없이 뚱한 얼굴.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어떤 감정으로 이 날을 기억하게 될까?
'다음에는 엄마랑 같이 와야지.'
엄마와 나, 각자 다른 기억이 머물게 될 이 산에서 다음을 기약한다. 그 미래에는 우리가 이 바위처럼 단단해져 함께 좋은 추억들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레는 기대를 품은 채 하산을 했다.
그날, 화산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서봉에서 탄 작은 케이블카 안, 낯선 중국인들 사이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내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공포에 덜덜 떠는 나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타인들이 다정히 내민 손을 꼭 부여잡으며 다짐했다.
'다음에 오면, 서봉에서 다시는 이걸 타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