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도 우리도 변해서 교토를 다시 찾다
7월에 2주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물론 이번에도 가족 전부 함께다. 수인이가 10~11개월 때 독일에 한 달 다녀왔는데 원영이는 7~8개월 때 유럽에 가는 셈이다. 걱정은 됐지만 일단 질렀다. 한번 해보고 나니 결정이 훨씬 더 쉬워진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놓치면 그 시간과 기회는 다시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여행과 관련된 이런 결정은 참 잘한다. 덕분에 수인이와 원영이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분명히 즐거웠다고 할 거라고 믿는다.
일단 결정을 하긴 했는데 원영이가 비행기를 과연 잘 탈 수 있을지 예행연습이 필요해서 교토에 가기로 했다. 원영이가 태어난 지 이제 6개월. 4년 전, 정확히 같은 시기에 수인이는 예행연습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원영이는 일본이라니. 원래 또 제주도에 가려고 했는데 비행기랑 숙박이 너무 비싸길래 그냥 일본으로 정해버렸다. 어차피 비행시간도 30분가량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유럽여행 시기도 그렇고, 첫 비행기 여행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업그레이드됐다. 이런 아빠 엄마에게서 태어났으면 여행이 숙명이니 받아들이렴.
교토는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800일 기념! 8년 뒤에도 또 오자."
라는 메시지를 적었던 곳. 2009년에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왔던 곳이 오사카와 교토였다. 그런 곳에 정확히 10년 만에 다시 오게 됐다. 교토의 강산이 한 번 변한 시간 동안 우리도 많이 변했다. 풋풋했던 20대 중반의 두 사람이 이제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30대 중반이 됐다. 시간이 참 덧없기도 하고, 동시에 수인이와 원영이를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다시 찾은 교토는 그런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 곳이었다.
교토에서는 전 일정 동안 차량을 렌트해서 다녔다. 그리고 렌트와 함께 한 교토는 자유롭게 유람하기에 정말이지 최고의 도시였다. 어찌 보면 제주도보다도 더 좋았다. 흠이라면 주차비가 워낙 비싸서 하루에 1~2만 원씩 꼬박 주차비로 나갔다는 점 정도. 그래도 교토여서 참 다행이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대략 3가지 정도. 물론 수인이와 원영이가 건강하게 잘 다녀준 점이 가장 크긴 하다. 고맙다, 우리 사랑하는 딸과 아들.
1. 일본 전통 집의 매력
교토에서 숙소는 일본 전통 다다미 집이었다. 만화에서 많이 보던, 실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갈 수 있고 바닥엔 다다미가 깔려있는 그런 곳이었다. 정말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하지만 시설은 깔끔하고 주방까지 다 갖춰진 그런 곳. 집 바로 앞 골목은 차가 아예 통행이 불가능한 매우 좁은 도로였다.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길에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어 상당히 포근한 길이었다. 교토는 우리 가족이 가본 일본의 다른 도시들보다도 이런 일본 전통 숙소가 훨씬 더 많았다.
수인이는 일단 엄청 신났다. 1층과 2층을 왔다 갔다 하며, 여기저기 창문도 열어보고. 일본 집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실 원영이처럼 어린아이가 있을 때도 침대보다 이런 다다미방이 더 편하다. 떨어질 염려도 전혀 없고, 침대보다 공간도 덜 필요하다. 푹신한 이불 덕분에 웬만한 침대만큼이나 편하기도 하고. 덕분에 3박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잘 자면서 푹 쉴 수 있었다.
하루는 저녁에 들어오는데 골목에서 생선구이 냄새가 났다. 곧이어 좀 걸으니 카레 비슷한 냄새도 났다. 집 곳곳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요."
수인이가 걸어가면서 이런 말을 자연스레 할 정도였다. 아파트에 살면 그냥 우리 집에 간다는 느낌만 있는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 들어온다는 느낌이었달까. 묵는 내내 우리 역시 저녁을 직접 해 먹었는데 이런 분위기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대도시와 다른 색다른 재미가 있는 포근한 곳. 교토는 집에만 있어도 즐거운 곳이었다.
2. 선택지가 많다
둘째 날, 옛날의 추억을 살려 기요미즈데라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입구부터 이어진 엄청난 차량 행렬 때문에 10분 넘게 끼어 있다가 결국 주차도 못하고 그대로 돌려서 나왔다. 그러고 나서 향한 곳이 후지미나리 신사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리이로 유명한 곳. 유모차 가지고 가기도 좋고, 풍경도 색다른 모습이라 기요미즈데라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하나도 남지 않았던 그런 곳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엔 변수가 많다. 늘 계획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기요미즈데라뿐만 아니라 근교의 산젠인에도 갔다가 다른 일 때문에 바로 일정을 바꿔서 난젠지로 가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교토엔 다른 대안이 많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 말은 가보지 못한 수많은 곳들이 아직도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인이와 원영이가 좀 더 크면 교토엔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3. 드라이브만 해도 좋은 도시
첫째 날 저녁, 시간도 애매하고 딱히 뭐 하고 싶은 것도 없기에 교토 타워에 가서 야경이나 보고 숙소로 일찍 들어가자 해서 교토 타워 지하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수인이가 좋아하는 돈까스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는데(물론 원영이는 따로 분유...), 다 먹고 야경을 보러 가려고 했더니 수인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아빠 배가 아파."
"응? 배가 아파? 어디가 아파?"
"여기가 아파. 아파아아아. 엉엉."
"많이 아파? 화장실 갈까?"
"아니야. 배 아파."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우리 딸. 밥도 잘 먹고 갑자기 그러는 게 뭔가 이상했지만 일단 안전하게 하기 위해 숙소로 빨리 돌아갔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일본 병원에 갈까 하고 물어봤다.
"수인아, 많이 아파? 일본 병원에 갈까?"
"아니. 병원 안 갈 거예요. 조금만 아파요."
응? 그때 깨달았다. 꾀병이로구나. 이제 이 녀석이 어느새 커서 꾀병도 부릴 줄 아는구나. 사실 전에 일본 집에 가자고 자꾸 그러긴 했다. 그러는 걸 아빠 엄마가 반짝반짝 야경이나 보고 가자고 했더니 더 빨리 가고 싶어서 꾀병을 부렸나 보다. 역시나 집에 가서는 엄청 신나서 배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뛰어놀았다. 황당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 녀석이...
둘째 날에는 자동차를 타고 40분가량을 달려 교토 교외의 산젠인까지 가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큰일이다. 원영이 분유 탈 비닐팩을 안 가져왔네. 어쩌지?"
"어쩌긴. 돌아가야지. 원영이 맘마가 젤 중요하잖아."
원영이 분유를 타려면 일회용 분유팩이 필요한데 그게 없고, 원영이가 먹어야 할 시간은 이미 도래했고, 그럼 얼른 돌아가는 수밖에. 다시 다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원영이를 먹인 후에 대신 찾은 곳이 난젠지였고, 너무나도 좋았다. 그 앞에 한국에서 요즘 핫한 블루보틀 커피도 있기에 핵인싸의 커피를 즐길 수 있었던 건 덤으로 얻은 즐거움.
이런 돌발 상황들이 유달리 많이 발생했던 교토 여행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기분이 나쁘다거나 아쉽다거나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교토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교토 시내 곳곳의 예쁜 모습들, 관광지는 아니지만 커다란 이름 모를 각종 절들, 곳곳의 공원, 근교의 산속을 달릴 때의 시원함과 일본 특유의 쭉쭉 뻗은 나무들. 차를 타고 돌아보는 이 모든 모습들이 기분 좋은데 그런 몇몇 명소들 따위 못 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랴. 게다가 수인이와 원영이 역시 차에서 잠을 잘 때는 평화롭고, 잠에서 깰 때는 수인이를 따라 뽀로로와 터닝 메카드와 타요 노래를 따라 부르면 되니까 그것 역시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이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렌트카가 확실히 편리하다. 교토는 드라이브 그 자체의 즐거움이 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