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에스프레소는 절대 쓰지 않다. 첫맛은 묵직하고 넘김은 강렬하지만 이내 커피의 진한 향이 입 안 가듯 퍼진다. 그리고 그 향이 매우 오래간다. 보통 물을 같이 주는데 그 잔향이 아까워서 물을 오랫동안 안 마신다. 설탕은 넣지 않는다. 방해만 될 뿐.
맨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신 건 순전히 저렴해서였다.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 않던 시절, 카페라는 곳에 처음 가서 커피를 시키게 됐는데 멋도 모르고 일단 가장 저렴한 걸 시켰다. 지금은 아메리카노가 다 지배해 버려서 에스프레소를 팔지 않는 카페들도 많지만 오히려 옛날에는 가장 기본인 에스프레소 정도는 다들 팔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에스프레소를 처음 받아봤는 데 정말 실망했었다. 이게 이 가격이라고? 이 조금 주는 건 뭐야? 잘 나온 거 맞나? 또 왜 이렇게 써? 하지만 그 뒤로도 에스프레소를 몇 번 더 시켰다. 카페를 갈 일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싼 걸 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
요즘은 한국 카페들이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잘하는 것 같다. 다만 아쉽게도 에스프레소가 주류가 아니라서 잘 찾기가 힘들 뿐. 그러다가 가끔 에스프레소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자연스레 들어가서 에스프레소 도피오 한 잔 주문한다. 전에는 에스프레소 콘 파나,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등 다양한 것들을 마시기도 했지만 지금은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설탕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허세롭게 거절한다. 설탕은 필요 없어. 나는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시키는 사람이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지. 뭐 혼자만의 허세인데 어때. 도피오 한 잔을 딱 가볍게 마시고 나오면 왠지 흐뭇하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고작 커피 한 잔에 그렇게 될 수 있다니, 그것도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로. 그러고 보면 가성비가 참 좋네.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가 옆에 두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커피라면 에스프레소는 정말 딱 커피 하나에 집중해서 바로 마시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커피다. 바쁜 일상 속에 말 그대로 잠깐 Coffee Break를 할 수 있는 커피. 왠지 멋진 비즈니스맨이 된 느낌이다. 바쁜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에스프레소는 꼭 도피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