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예찬

by 본격감성허세남

역에 파는 수많은 도시락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몇 개 사서 기차에서 여유 있게 먹는다. 함께 사온 커피도 한 잔 곁들인다. 이어서 나는 글을 쓰고 아이들은 잠시 공부를 한다. 나 어릴 때는 방학 때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해야 하는 학습지는 언젠가는 꼭 해야 하니까 이럴 때 하면 쟤들도 편하지 뭐. 잠깐 창밖을 보니 전형적인 일본 시골 풍경이다. 이곳 사람들에겐 그냥 흔한 풍경이지만 여행자에겐 그런 것조차 이국적이라 잠시 바라본다. 이제 1시간 정도 남았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하게 누워서 가다 보면 금방 도착할 거다.


처음 비행기를 탔던 건 초등학교 시절 제주도 갈 때였다. 그때는 비행기만 타도 모든 게 신기했고 그저 좋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면서 처음으로 장거리 비행을 할 때도 좋았다. 11시가 30분가량을 가는데 한 번도 자지 않고 내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싶다. 지금은 비행기가 가장 싫다. 흔히 타는 대중적인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싫다. 좁고, 사람도 너무 많고, 대기하면서 버리는 시간도 너무 많다. 가장 별로인 건 각종 하지 말라는 제약들이다. 비행기를 탈 때는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액체류도 안 돼(근데 왜 들어가서 사는 건 되는 거야), 물건 규제도 심해, 게다가 요즘은 보조 배터리까지 못 쓰게 하니까 뭐. 아무리 완전히 단절된 공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지만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더라도 기분은 영 별로다.


반면 최고는 역시 기차다. 아... 기차!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이라는 바로그 기차! 타고 가다가 괜찮은 곳이 나오면 훌쩍 내렸다가 다시 타야 할 것 같은, 설레는 바로 그 기차! 기차는 일단 교통체증이 없기에 스트레스가 덜하다.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풍경이 휙휙 바뀌기에 시간도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 스르르 잠들기 쉬울 만큼 좌석도 편하다. 특히 이번 일본 기차 여행처럼 고속열차 1등석을 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도쿄에서 나고야와 오사카를 거쳐 히로시마로 가는 길, 이렇게 여유 있게 가도 되나 싶다. 비행기보다 느리지만 앞뒤로 버리는 시간이 훨씬 적기에 실제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기차는 역에 15분 전에만 도착해도 여유롭게 탈 수 있고 대부분 도심에 있어서 접근성도 월등히 좋으니까 더욱. 글쓰기도 좋고, 음악 듣기도 좋고, 책 읽기도 좋고, 게임하기도 좋고. 아 역시 기차! 비행기가 점과 점을 점프한다면 기차는 점과 점을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잇는다. 비행기보다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여유가 있고 동시에 낭만적이다. 이렇게 길을 가다 보면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왠지 흐뭇해진다.


아, 비행기가 기차보다 좋은 게 딱 하나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 하지만 그건 쉽게 탈 수 없으니... 비즈니스 클래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되면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은 실감이 날 것 같다. (그날이 올까?_


"돈 많이 벌면 뭐 하고 싶으세요?"

"비즈니스 클래스 자유롭게 타고 원하는 곳으로 가서, 기차 타고 여유 있게 돌아다니고 싶어요."


사고 싶은 건 없는데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하고 싶으니 엄마가 나한테 늘 '돌멩이'라고 하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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