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

by 본격감성허세남

20대 초반에 나가사키의 원폭 평화 기념관에 갔던 적이 있다. 추도비도 보고, 공원도 돌아보고, 기념관이나 자료관도 둘러보고 하면서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희생된 사람들이야 안타깝지만 그런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들에게 있었을 텐데, 그들이 다른 곳에 가서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 것들도 많을 텐데, 그런 것들은 다 숨기고 피해만 강조해 놨던 것 때문에 당시 그곳이 딱히 좋아 보이진 않았다.


20년이 흘러서 이번엔 히로시마의 원폭 폭심지에 방문하게 됐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당시 폭심지 근처에서 살아남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도 지나고, 근처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던 건물도 가고, 그 외 이런저런 자료들도 둘러봤다. 묘하게도 이번에 느낀 감정은 20대 초반과는 상당히 달랐다.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결국 변한 건 나일 거다.


머리로만 세상을 보던 시절, 나와 집단을 동일시해서 보던 젊은 시절에는 내가 조선이고 피해를 당한 그 사람들이 일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집단이 아니고 집단도 내가 아니더라. 거기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라는 집단이 아닌 그냥 수많은 다른 개인들일뿐이다.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그런 많은 개인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희생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 똑같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많은 다른 이들이 반대로 피해를 당하는 게 당연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영문도 모른 채로 순식간에 죽었을 그 사람들만, 그리고 저 일로 인해 이후 계속 고통받았을 사람들만 안타까울 뿐이다. 20년이 흐르니 그런 안타까움이 먼저 보이게 변했다.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사실 그건 우리가 자초한 일이고, 우리도 세계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끔찍한 일들을 벌였고, 그 결과로 이런 폭탄을 맞게 됐으니 희생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일본 제국에 태어난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 과거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


젊을 때의 나라면 저렇게 썼어야 했다고 이야기했을 거다. 그런데 저렇게 쓰여있다면 과연 옳은가? 누굴 위한 거지? 최근에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손종원 셰프의 말처럼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미슐랭 3스타인 건 아니다. 집단은 집단이고 개인은 개인이지 그 두 가지는 절대 동일시될 수없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걸 늦게라도 깨달은 건 참 고맙고도 큰 변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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