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고요함

by 본격감성허세남

TV 소리도 없고, 음악 소리도 없고, 나를 찾는 애들 소리도 없고, 바깥의 자동차 소리도 없는 상태. 말 그대로 고요했다. 어디선가 타닥타닥 소리가 들리기에 뭐지 하고 봤더니 벽에 걸려있는 아날로그시계에서 나는 초침 소리였다. 저 소리가 저렇게 컸던가? 이 정도로 고요하니 평소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저런 소리까지 들려서 신기하다. 마침 스마트폰에서도 아무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런 고요함을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깊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볼 것도 들을 것도 할 것도 수없이 많은 그런 세상이다. 잠시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허전하고 동시에 이래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런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그래도 과감하게 이렇게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선택을 용기 있게 하고 나면 평소에 잘 못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차분함, 평화로움, 갑자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괜한 자신감까지. 모두가 조용해 괜히 센치해지는 늦은 밤이 아니라 낮에 이렇게 있으니 더욱 묘하면서 이상한 감정이다. 춥지만 않았으면 나가서 좀 걸었을 텐데. 추워서 집에 있으니 오히려 다행인 건가 싶으면서 추운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과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 춥다고 짜증 냈는데. 이런 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비록 믿는 신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감사드렸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빨래를 갠다. 건조기에 조금 들어가 있다가 나온 빨래는 적당히 차갑고 좋은 냄새도 나서 기분이 좋다. 접을 때 나는 옷감이 스치는 소리도 좋다. 평소에 내 감각이 외부의 자극에 눌려 얼마나 둔했었는지 알겠다. 빨래 정리를 마치고 나서는 침대에 누워 요즘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애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약 2시간 정도 남았으려나.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련다. 얼른 이 글만 쓰고 말이지. 이제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이런 기분을 또 느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따각따각 소리마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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