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서의 술

by 본격감성허세남

일본에서 위스키 세 병을 사 왔다. 휴가를 가기 전에 사람들에게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하는 법. 함께 마시면 좋을 법한 것들로 골라봤다.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생각을 하니 괜히 흐뭇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그게 억지가 아니어야 하고, 굳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한에서 일 거다.


회사에서 술 동호회를 만들고 활동한 지 벌써 30개월이 넘게 지났다. 매월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에 맞춰 술을 준비하고,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모여 즐긴다. 그래서 동호회 이름이 '1차연구회'다. 흔히 말하는 2차나 3차가 아닌 딱 1차만 즐기자는 말이고 동시에 술에 취하는 것보다는 말 그대로 탐구를 하자는 뜻이다. 그동안 위스키부터 사케, 럼, 브랜디, 약주, 맥주, 소주, 진, 막걸리 등등 수없이 많은 술들을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견문이 엄청나게 넓어졌지. 역시 음식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니까. 글이나 사진을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술도 분명히 음식이다. 그것도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된.


처음에 동호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조금이나마 회사 지원금이 나오는 제도인데 그걸 술 마시는 데 쓴다고? 그냥 흥청망청 마시면서 취하는 게 무슨 동호회지? 뭐 이런 우려들이 있었고 그러려니 했다. 사실 '건전한 술 모임'이라는 건 굉장히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니까. 요즘은 점점 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는데, 덕분에 무알콜 시장이 엄청 크고는 있지만 그건 보완재일 뿐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술은 함께 즐기는 다른 것들을 더욱 살려주는 훌륭한 음식인데 무알콜에는 그런 게 없으니 말이다. 세상엔 정말로 다양한 술들이 있고 당장 소주만 하더라도 흔히 마시는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아닌 진짜 곡물로 증류해서 만든 제대로 된 소주들이 정말 많은데 술이라는 의미로 배제하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가. 술로서도 좀 억울할 거다. 내가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 나를 미치듯이 많이 마시고 그걸 핑계로 하는 다른 행동들이 나쁜 건데! 하지 않을까.


1차연구회 한 뒤로 소주를 못 마시겠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다. 참이슬 같은 희석식 소주는 제대로 된 술이 아니다! 맛있는 술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저렴하고 질 나쁜, 오로지 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술을 마시나. 술도 엄연히 훌륭한 음식이고 그 옛날 인간 역사부터 각 지역에서 함께 해 온 문화의 정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역사 속 큰 혁명에는 언제나 술이 함께 했으니 진취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앞으로 AI가 더욱 발전할수록 이성의 영역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술 같은 것이 다시 더 부흥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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