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느껴지는 공기가 온화하다. 이제 정말 겨울이 끝난 느낌이다. 이러다 또 3월 중순쯤 한 번 꽃샘추위가 찾아오긴 하겠지만 딱 그 하루이틀 정도일 거다. 모처럼 따뜻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날이라 이럴 때 가장 해야 하는 건 역시 걷기다. 오랜만에 산을 걸으니 적당히 기분도 좋고 적당히 활기도 도는 게 정말 좋았다. 행복이 별 건가. 이렇게 흐뭇한 게 행복이지.
올라가는 곳곳에 여기저기 돌탑이 많았다. 나 어렸을 때도 산에 가면 하나씩 만들곤 했는데 저런 풍습은 여전한가 보다. 우리 가족이 4명이니까 돌 4개를 모아서 우리도 오랜만에 작은 돌탑을 하나 만들어보았다.
"얘들아 소원 빌어봐."
"음.. 반 배정 잘 되게 해 주세요."
"그건 이미 발표 났잖아. 다른 소원을 빌어봐."
"좋은 친구 많게 해 주세요."
초등학생 2명의 요즘 최대 화두는 역시 반 배정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발표됐던 반 배정에서 친한 친구나 아는 친구가 몇 명 같은 반인 걸 확인해서 기뻐하던데 그러고 나서도 역시 반 배정을 계속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제 정말 새 학기인 게 실감 난다. 나는 예전에 어땠지?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던가. 하도 오래전이라 정말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때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수능도 가물가물한 걸 이제.
"대디는 무슨 소원 빌었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지."
내 소원은 건강이다. 이제는 정말 원하는 다른 게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는 느낌이다. 이럴 때 역시나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앞서와 다르게 이건 나이 먹음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게 시간이라 하지만 그 시간을 가지기 위한 가장 기본이 건강이니까, 아무리 열정이 넘치고 부지런하다 해도 결국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그런 걸 알게 됐으니까 긍정적이지 않나. 그렇게나 열심히 사시던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오래오래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다 넘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소원탑의 정령님, 부디 오래도록 쓰러지지 않으면서 우리 가족의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