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3년 전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잘 없는 나에게도 그날은 정말 선명하게 남아있다. 3월 중순도 안 됐는데 갑자기 20도를 넘었던 이상 고온에, 안경 대신 렌즈를 껴야 했는데 시력이 맞는 게 없어서 살짝 떨어지는 걸 꼈더니 좀 흐리멍덩했던 시야, 거의 40분 간 진행됐던 결혼식의 매 순간, 그리고 끝나고 부랴부랴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 순간까지. 확실히 인생의 큰 이벤트이긴 한가 보다. 1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다 기억하고 있는 건 결혼식이 유일한 걸 보면. 끝나고 갔던 신혼여행조차 이렇게 선명하진 않다.
그런 큰 이벤트의 기념일을 맞아 처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결혼식을 했던 장소에 방문해 봤다. 애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여기가 엄마아빠 결혼한 곳이야. 결혼 안 했으면 너네도 안 태어났어."
"아 그래?"
뭐 사실 나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 그런 곳이다고 알려줬을 뿐 주차장에서 보기만 하고 내리지도 않고 바로 다시 돌려서 내려왔으니까. 워낙 무덤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특별한 감회나 그런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다 보니 13년이나 흘렀고, 오늘은 웬일인지 한 번 와봤을 뿐이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고, 지금도 잘 살고 있지만 그건 그냥 하루하루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다. 굳이 시작을 찾아서 호들갑을 떨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놀란 건 그동안 생긴 모든 변화들이었다. 지금의 모습 중에서 당시에 이럴 거라고 상상했던 건 하나도 없다. 부모님, 주변 사람들, 직장, 집, 애가 둘이나 있을 것이란 것, 그 외 기타 등등 모두. 정말 변화무쌍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다. 특히 유난히 말이 느려서 많은 걱정을 했던 둘째가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제는 1초도 쉬지 않고 떠들어서 우리를 정말 피곤하게 만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지?
기념으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살이 매년 쪘고, 나이는 엄청 먹었고, 흰머리도 늘었고, 자산도 조금 늘었고, 이 귀여운 똥강아지들이 둘이나 생겼고, 피곤하고, 그래도 잘 살고 있고, 그러고 보니 괜찮네!
맞다. 어쨌든 잘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 결혼 전보다 훨씬 편해진 동시에 말이나 행동이 훨씬 과감해졌고, 그러면서 또 엄청 닮아버린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이젠 예전이 상상되진 않는다. 가끔 풋풋하고 설렜던 그땐 어땠지 하고 궁금하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굳이 그 시간들을 다시 살 필요가 있나. 그냥 또 이렇게 살다 보면 지금 상상이랑 완전히 다른 날이 기다리고 있겠지 뭐.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 재미있다. 아무튼 내일도 또 무덤덤하게 하루를 살아가야지. 그러다 보면 7년이 흘러서 20주년이 되겠지? 그때 이 글을 다시 보면 어떨까? 뭔가 다르려나? 그땐 좀 덜 무덤덤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