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영화감독을 잠깐 꿈꿨던 적이 있다. 그때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1년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혼자서 부산영화제도 가고, 서울의 온갖 크고 작은 극장들을 다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러다가 영화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닫고 영화감독의 꿈은 접었었다. 그건 예술의 영역이었다. 나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으로 보였다.
어쩌다 보게 된 읽게 된 이 책 <브로콜리 펀치> 때문에 갑자기 예전 영화감독을 꿈꾸던 시절이 생각난 건 왜일까. 소설 역시 예술의 영역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아서일까. 결코 닿을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걸 다시 한번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리라는 작가는 전혀 모르는 작가다. <같이 읽자는 고백>이라는 책에서 김초엽 작가가 추천한 책이라서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우습게도 김초엽 작가 책도 읽은 적은 없다) 우연히 전자도서관에서 발견해서 빌려놓기만 하고 또 읽지는 않고 있다가 한 번 대출기간을 연장하고 나니 왠지 찔려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러고 나서 거의 2일 만에 다 읽었다. 뭔가 대단하면서도 오묘하고 놀라운 그런 책이었다.
단편 소설집인 이 책에는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각 단편마다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 황당하다. 아빠가 죽어서 화장을 해서 그걸로 화분을 만들어서 식물을 심었는데 식물이 말을 한다든지, 갑자기 복싱 선수인 남자친구의 손이 브로콜리로 변해버린다든지, 돌과 대화를 한다든지, 사고가 나서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가 죽었는데 난데없이 외계인을 만난다든지, 몸이 반투명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다든지, 말하는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든지, 하여튼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배경이 미래도 아니고 그냥 흔히 보는 일상인데 거기서 저런 희한한 사건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또 주변 사람들은 그걸 모르거나 크게 신경은 안 쓰는 그런 묘한 모습을 상상하니 처음엔 좀 황당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하고 쓰냐. 소설가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언젠가는 나도 소설을 써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래 품어온 소재도 하나 있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은 사라져 버렸다. 역시 예술의 영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근 2~3년 동안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천선란 작가다. 그 사람 책은 닥치는 대로 읽은 것 같다. 오죽하면 천선란 작가가 인생책이라고 꼽은 <자기 앞의 생>까지 찾아 읽었으니. 이렇게 다 찾아서 읽은 건 예전에 밀란 쿤데라 이후 진짜 오랜만이다. 이유리 작가의 책이 워낙 엉뚱하면서 발랄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천선란 작가가 더 좋다. 천선란 작가의 작품에는 놀랍기도 하고 때론 어이없기도 한 상상력에 더해서 왠지 모를 어떤 뭉클함 같은 게 있다. 슬퍼서 뭉클한 게 아니라 왠지 아련하면서도 흐뭇하다고 해야 할까. 이유리 작가의 책에 그런 면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탁 치는, '아!'하고 감탄이 나지막하게 나오는 그런 부분들은 많았다. 책을 덮은 후에도 몇 번 더 곱씹어보게 되는 그런 부분 말이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들이다.
요샌 소설이 좋다. 돌이켜보면 젊어서는 소설은 많이 안 읽었다.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이젠 내가 가지 못하는 그 수많은 길들을 대신 살펴보는 게 좋다. 이것도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겨서일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인생을 담은 그런 멋진 작품을 하나 쓸 수 있게 되길 꿈꿔본다. 솔직히 재미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