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매화

by 본격감성허세남

남쪽 지방은 진짜 완연한 봄이었다. 정원이 멋진 카페에 가서 한가롭게 걷다 보니 매화꽃이 보였다. 올해 첫 매화다! 완전 활짝 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은한 분홍색이 참 예쁘기도 하지. 이제 매화꽃이 폈으니 곧 벚꽃도 피고 주변이 알록달록 예뻐지는 그런 시기로구나. 핸드폰을 들고 하늘과 함께 예쁘게 매화꽃을 찍다 보니 왠지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 같은 행동을 내가 자연스럽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톡이 세상에 나오고 다들 프로필 사진을 꾸밀 수 있게 된 후 많은 어르신들이 신기하게도 꽃 사진으로 프로필을 해놨었다. 내 또래들은 다들 셀카 아니면 본인이 나온 예쁜 사진으로 해놓던 그런 시기였는데 어르신들은 오히려 본인을 숨겨놓고 있었다. '내 프로필은 나를 표현해야지 왜 꽃으로 해놓는담.' 그런 생각으로 넘기곤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내 사진은 거의 찍지 않게 됐다. 사실 아마 상당수가 꽃이 본인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냥 예쁘니까, 내 사진은 없는데 뭔가를 해놓긴 해야겠고, 그러니 기왕이면 예쁜 사진을 해놓기 위해 꽃 사진을 올려놓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거다.


20대 때는 정말 나만 보이고 나만 알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나는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랄까, 의무감이랄까, 그런 게 점점 사라지면서 동시에 나 말고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이 보이고, 꽃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실용적이거나 때론 과시하기 위한 그런 책들 말고 그냥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 자신의 삶만 보며 살다가 시야가 좀 더 넓어진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좀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예전엔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늘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았는데. 때론 하루가 30시간쯤 됐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그렇다면 하루가 얼마나 끔찍할까.


긴 겨울이 지나고 이렇게 새로운 봄을 마주하게 되면 전과 다르게 이젠 왠지 느낌이 좋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생각보다 별 일 아니더라. 이렇게 예쁜 꽃 보고 흐뭇하게 보내다 보면 곧 여름이 되고, 아 대체 이 긴 여름은 언제 끝나는 거야 하다 보면 또 선선해지고, 그러다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추운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그냥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사는 거다. 물론 갈수록 몸 어딘가가 조금씩 안 좋아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또 이렇게 예쁜 꽃 보며 감탄할 수 있으니 또 기분 좋게 새로운 봄을 맞이하면 되는 것 아닐까. 어쨌든 봄은 봄이고 괜히 힘껏 점프 한 번 더 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매화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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