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by 본격감성허세남
사랑스런 S30.JPG
"무언가를 질렀을 때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예요?"
"카메라를 처음으로 샀을 때요."
"언제 샀는데요?"
"2003년 2월 28일,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샀죠."


'가장', '제일' 이런 말을 들으면 늘 고민하게 되지만 지름에 관해서는 언제나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카메라다. 과거 기억이 희미한 내가 그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바로 그 첫 지름이니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남대문 수입상가에 가면 싸다는 말 하나 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흥정하던 그 순간까지 모두 생각난다. 얼마냐고 했더니 말 대신 계산기를 두드려서 보여주고 그랬지. 싸다는 이유 하나로 정품도 아니고 병행 수입 제품을 샀지만 그저 좋았다. 그 뒤로 수많은 지름이 있었지만 태어나서 가장 설렜던 건 언제나 그때다. 차도, 첫 유럽 여행 항공권도, 집도, 그 무엇도 아닌 카메라. 캐논 파워샷 S30.


사실 왜 사려고 마음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처음으로 대중화되던 시기였기에 아직 굉장히 비쌌다. 고작 320만 화소 카메라가 3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으니 지금 물가로 치면 100만 원 가까이 가는 가격일 거다. 그런데 돈도 없던 내가 거의 전재산을 들여서 구입을 했으면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었을 텐데 그건 기억이 전혀 안 난다. 그전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랬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무튼 그때는 그저 설레고 좋았다. 찍는 대로 화면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컴퓨터로 옮겨서 봤을 때는 더욱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가 3월이면 가끔 그때의 그 설렘이 생각난다. 그땐 늘 가지고 다니면서 항상 무언가를 찍곤 했었다. 여행을 갔다가 떨어뜨려서 깨졌을 땐 얼마나 슬펐는지 정말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이룰 수 없기에 한없이 아픈 첫사랑 같은 그런 카메라였다.


그 뒤로 미놀타, 콘탁스, 소니, 캐논, 파나소닉, 펜탁스, 삼성, 후지, 리코 등 수많은 브랜드들을 거치면서 수많은 카메라를 샀지만 S30을 처음 샀을 때의 그런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사진 찍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고 핸드폰 카메라가 계속 좋아지는 만큼 동시에 손에 카메라를 드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간편하게 찍을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가 참 고맙다가도 조금은 불편하고 크기도 컸지만 만족도는 훨씬 컸던 그때의 카메라가 그립긴 하다. 명색이 '디지털' 카메라인데 마치 아날로그처럼 느껴지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첨단이 꼭 좋고 설레기만 한 건 아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지원을 할 때도 가장 먼저 생각했던 곳은 삼성테크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경쟁력 있던 카메라를 만들던 유일한 기업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합격했음에도 결국 다른 곳에 가긴 했지만 카메라는 한때 그 정도로 내 전부나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이 앞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으니 왠지 미안해진다. 괜히 바람 불어서 먼지 한 번 털어준다.


"... 자니?"
"아니. 웬일이래? 나한테 말을 다 걸고."
"그냥 문득 생각나서. 소홀해서 미안해."
"알면 됐네. 우리 옛날엔 좋았잖아."


이번 주말엔 다시 옛날처럼 카메라 들고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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