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by 본격감성허세남

누군가는 '그깟 공놀이'라고 했다. 맞다. 이게 공놀이지 뭔가. 그런데 왜 나는 황금 같은 주말에 여기 와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공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응원하고 때론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는가. 그들이 이긴다고 내 삶에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그들이 진다고 해서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이렇게 내 돈까지 내 가면서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2026 K리그1 FC 서울의 홈 개막전, 마침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은데 웬일로 축구까지 엄청 잘해서 심지어 5대 0으로 이겼다! 국내외 축구장에 그렇게 많이 갔는데 내가 응원한 팀이 5대 0으로 이긴 적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면 없는 것 같다.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야. 이런데 어찌 이성을 따질 수 있겠어. 그저 이곳에서 이런 걸 보며 기뻐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거지. 역시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 너무나도 기뻐서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손뼉 치고, 집에 가는 내내 기사를 찾아보거나 팬 커뮤니티 글을 살펴보고, 그러고 나서 또 리플레이로 다시 보고. 정말 순수하게 기뻤다.


전에 아내와 연애할 때부터 축구장엔 정말 많이 갔다. 지금은 애들 때문에 가끔 나 혼자만 가는 사정이지만 연애부터 신혼 때까지는 시즌권을 끊고 거의 모든 경기를 보러 갔었다. 경기 보면서 소리도 많이 지르고, 때론 엄청 욕도 하고, 때론 함께 부둥켜안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지.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선수가 은퇴를 할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가족이 은퇴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슬프면서 진심으로 선수 이후를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기도 했다. 그깟 공놀이라니, 적어도 이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놀이였다.


스포츠도 결국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팬이라는 사람들의 감정을 등에 업고 그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그런 산업이 엔터테인먼트가 아닐까. 스포츠뿐만 아니라 아이돌이나 콘텐츠 산업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보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빠진 사람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것, 그런 비합리적이기에 더 매력적인 그런 산업. AI가 어쩌고 하면서 세상이 엄청 바뀐다고 하지만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산업만큼은 앞으로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감정은 AI든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가 없으니까. 꼭 지금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더 커질 것이다. 역시 미래는 엔터테인먼트다!


20대 중후반쯤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무작정 FC 서울에 메일을 보냈던 적이 있다. 공고는 없었지만 그저 입사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뽑는지 물어봤었다. 답이 안 오면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답이 오더라. 지금은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관심 있으면 공고를 확인해 달라고. 아쉽게도 결국 내가 다른 회사로 가고 나서 몇 개월 후에 채용 공고가 뒤늦게 뜨긴 했지만 그때 만약 내가 갔다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 역시 언젠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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