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꽃, 그리고 유일한 변수 : '나'라는 인격

“저기요, 패티가 안 익은 것 같은데요?”

by 다연

카운터에서 마주한 고객의 의구심 어린 질문.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맥도날드가 자랑하는 ‘시스템의 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흔히 말하는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란 진정 매뉴얼의 승리다. 감자튀김의 양과 온도, 기름을 교체하는 주기까지 모든 것이 시스템화된 기기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햄버거 패티 역시 마찬가지다.


그릴 위에 패티를 깔고, 다 구워진 것을 꺼내는 동작만이 사람의 몫이다. 그릴은 위아래로 동시에 열을 가하기에 사람이 고기를 뒤집을 이유조차 없다.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시스템화된 기기는 이제 됐다는 듯 그릴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크루는 그저 그 타이밍에 맞춰 패티를 건져 올릴 뿐이다. 이 정교한 메커니즘 안에서 ‘덜 익은 패티’가 나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곳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은 비단 조리법뿐만이 아니다. 맥도날드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소지품은 철저히 차단된다. 핸드폰, 귀걸이, 반지는 물론이고 목을 축일 개인 텀블러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며,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위치를 바꿀 수 없다. 모든 것이 통제하에 움직여지는 이 규격화가 바로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와도 결과물은 거의 비슷하게 제공된다.


하지만 이 완벽한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도 결코 복제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다.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 각각의 ‘고유한 인격’이다. 내부 리더십의 비합리적인 모순이나 텃세를 마주할 때면,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묵묵히 내 할 일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다스린다. 감정적으로 대응해 시스템의 소음이 되기보다, 나를 다듬어 평온을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돈된 마음으로 카운터에 서면, 비로소 시스템 너머의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든이 훌쩍 넘으신 단골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신다. 익숙한 반말과 함께 쏟아지는 디테일한 요구사항들. "감자는 지금 막 튀긴 걸로 주고, 맥치킨 버거는 이따 집에 갈 때 챙겨줘. 냅킨 많이 주고 콜라는 얼음 빼고." 예전의 나였다면 '참 까다로운 진상 고객'이라며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성숙해진 지금의 나는 그분의 요구 속에서 다른 것을 읽는다. 자신의 취향을 이토록 명확히 말씀하실 수 있는 총명함, 그리고 매일 이 먼 길을 걸어 맥도날드를 찾아주시는 그 정정한 건강함. 그 까다로운 주문서가 나에게는 어르신이 오늘도 무사히 이곳에 당도하셨다는 반가운 안부 인사로 들린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셔서 인사를 건네주시는 그 모습이 이제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모든 것이 시스템화된 기기 앞에서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지만, 결국 서비스를 완성하는 마지막 온도는 그 사람의 인격에서 나온다. 시스템은 모든 크루를 똑같은 부품으로 만들려 하지만, 고객의 눈을 맞추며 그 일상의 안부까지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소지품은 모두 사물함에 넣어둔 채, 오직 나만의 인격만을 챙겨 카운터로 향한다. 시스템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그 따뜻한 변수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내일도 건강한 모습으로 '까다로운 주문'을 던져주실 그 어르신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말이다.


하지만 감동의 여운은 언제나 찰나다. "어르신,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해요. 맛있게 준비해 드릴게요!"라며 세상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뒤를 도는 순간, 내 눈앞에는 인류애를 시험하는 거대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주문 모니터 가득 빨간불을 켜고 나를 째려보는 수십 개의 메뉴들. 훈훈했던 '어른 크루'의 모드는 뒤를 도는 0.1초 만에 차가운 '터미네이터'의 전투 모드로 강제 전환된다. 자, 이제 인류애는 잠시 접어두고 빛의 속도로 쟁반을 채워야 할 시간이다.


훈훈함에서 전투 모드로의 이 아찔한 변환! 쏟아지는 주문 대란 속에서 나는 과연 품격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궁금하시다면, 다음 연재에서 본격적인 '카운터 전쟁사'를 기대해 주세요.

(전투 식량은 역시 맥너겟이 최고다 :)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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