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은 사람이다
맥도날드 크루가 되기 전부터 나는 이곳의 ‘테이블 서비스’를 유난히 좋아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누군가 내 자리로 직접 음식을 가져다준다는 건,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정중한 대접을 받는 듯한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카운터 안쪽의 세계로 들어온 지금, 그 다정한 서비스 뒤에 숨겨진 크루들의 무수한 발걸음과 시큰거리는 통증을 비로소 헤아리게 된다.
테이블 서비스 주문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끔은 야속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쿠폰을 하나씩 사용하느라 생긴 번거로움이겠지만,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챙겨 2층 끝자리까지 배달하고 내려오면 방금 다녀온 그 테이블에서 후렌치 후라이 하나가 주문으로 들어온다. 그걸 전달하고 내려오면 다시 콜라 한 잔이 신청되어 있곤 한다. 2층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나의 무릎과 숨 가쁨은 효율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날것의 노동이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피크 타임, 양손에 햄버거 세트가 가득 담긴 무거운 트레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면 손목이 시큰거려 온다. 대부분의 손님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지만, 간혹 시스템의 편리함이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린 이들을 마주할 때 노동의 고단함은 배가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몸의 고단함보다 시스템의 왜곡에서 온다.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시간, 나는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음료를 뽑으며 동시에 테이블 서비스를 책임져야 했다. 마음은 급해지는데, 소위 말하는 ‘맥날의 텃세’가 발동한 것이다. 팀 리딩을 하는 리더는 다른 크루들이 나를 돕지 못하게 막아서며, 음료를 다 끝내기 전엔 테이블 서비스를 나가지 말라는 서슬 퍼런 명령을 내린다. 음료 제조와 테이블 서빙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나를 방관하는 시선들 속에서, 나는 리더의 텃세가 잘 짜인 시스템을 안쪽에서부터 망가뜨리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렇게 발이 묶여 서비스가 지연되던 찰나, 한 초등학생이 카운터로 내려와 쏘아붙였다. "저기요! 테이블 서비스 안 하세요?" 바쁘게 움직이는 내 손을 뻔히 보면서도 아이는 기다림을 참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지금 테이블 서비스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 순간, 맥도날드가 자랑하는 테이블 서비스는 전혀 효율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손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기다렸을 테고, 시스템상 음식이 준비되는 순간 나는 바로 달려갔어야 했다. 시스템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지만, 리더의 텃세는 그 흐름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회의감이 해일처럼 밀려와 나의 마음을 온통 휘저어 버렸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크루와 서비스를 기다리는 손님 사이에서, 잘못된 리딩이 만든 장벽 때문에 시스템의 부품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정신없는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비어버린 컵과 재고들을 채우며 다음 손님이 몰려올 것을 대비하는 이 시간, 나는 휘저어진 마음의 앙금을 가라앉히며 나만의 ‘주권’을 찾기 위한 의식을 치른다.
리더의 영향력이 사적인 '권력'으로 남용될 때 발생하는 비효율을 목격하며, 나는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도 나는 다시 나의 자리를 정돈한다. 나이 많은 크루인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기로 한다.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 화를 꾹꾹 눌러두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내 할 일에 더 집중하며 스스로를 다스려 본다. 이런 크루도 현장에는 한 명쯤 꼭 필요할 테니까. 휘둘리지 않고 다시 묵묵히 나의 일을 수행하며, 나의 자리를 지키는 그 뒷모습만큼은 여전히 '다연스럽게' 당당해지기 위해 일에 더 빨리 익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나는 시큰거리는 손목을 다독이며,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음 주문을 기다린다. 그런데 아뿔싸, 평화는 역시나 짧았다.
“저기요, 패티가 덜 익은 것 같은데요?”
이 폭풍 전야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 연재를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