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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Feb 07.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3. 예상치 못한 동행이 생긴다는 건

[브라질, 포즈 두 이과수 /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과수]

셋 다 호스텔을 나설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로비로 198cm의 키다리 청년이 내려와 인사를 건넸다. 가브리엘, 티아고와 어제 만나 친해졌다는 로드는 계속 포르투갈어만 쓰길래 영어를 못 하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부끄러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친구였다. 이 셋은 파라과이로, 나는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다 함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짧은 만남에 아쉬움이 커져, 이따 폭포로 오면 연락 달라고 말하는데 티아고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오늘 아르헨티나로 안 가려고."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가브리엘이 덧붙였다.


"파라과이만 갔다 와서 여기서 하루 더 자기로 했어. 오늘 밤에 같이 놀 거지?"


"아 ㅋㅋㅋㅋㅋㅋ 말도 안 돼. 정말 이렇게 막 결정 바꾸고 그러는 거야?"


"응, 우리도 이제 떠나면 브라질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서. 특히 브라질 음식은 정말 맛있거든."


"그러고 보니 나 아직 제대로 브라질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심코 던진 내 말에 셋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브라질에 왔는데 브라질 음식을 못 먹어보는 건 말이 안 되지. 오늘 저녁으로 브라질 요리를 해 먹자! 너 폭포 다녀올 때까지 우리가 호스텔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한껏 기대되는 저녁 생각에 아르헨티나행 버스를 타러 가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날 위해 수많은 버스가 도착하는 어지러운 터미널에서 정확한 위치까지 알아내 바래다주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버스가 와서 줄을 서서 탑승하는데, 국경 버스라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화폐를 둘 다 받는 바람에 기사가 거스름돈을 제멋대로 주는 모양이었다. 거슬러 받고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너는 요금 얼마 냈어?"


루비와의 만남이었다. 당일치기로 아르헨티나 쪽 폭포를 보는 계획이 나와 똑같아서 그렇게 하루 일정을 함께하게 되었다. 인도계 뉴질랜드인인 그녀는 뱅커로 일하다가 지금 세계일주 중이라고 했다. 이 날은 버스를 기다릴 일이 유독 많았는데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도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브라질 쪽 이과수 폭포에서는 온종일 혼자 다니느라 꽤나 심심했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아르헨티나 버스터미널에선 브라질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열여덟 살의 당찬 독일 소녀 히키를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브라질로 1년 자원봉사를 왔다는 그녀는 포르투갈어도 조금 할 줄 알아 큰 도움이 되었다. 셋이 된 우리는 국경으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 버스는 회사가 여럿 있는데, 아르헨티나로 갈 때도 브라질로 올 때도, 브라질 국경 심사 때는 승객을 내려준 후 심사를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 버린다. 그러면 동일한 회사의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20분에서 1시간가량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여기 현지인들은 브라질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외국인 몇 명만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 대신 아르헨티나 국경 심사에서는 전원이 내리고 버스도 기다려 준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아르헨티나 출국 도장을 받던 중, 기사가 우리 셋을 잊고는 다른 승객들만 먼저 태우고 출발해 버린 것. 이미 시간이 초저녁이라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니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1시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고 3km를 가서 브라질 심사 때 내린 후, 또 1시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정도로 기다릴 엄두도 나지 않았거니와 브라질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에 늦고 싶지 않았다.



다른 회사 버스에 3km만 태워 달라고 부탁을 해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우리는 3km를 걸어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내가 히치하이킹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걸 처음 해본다고 걱정하던 히키는 막상 하게 되자 지나가는 차마다 붙잡고 포르투갈어로 가장 열심히 사정사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딱 3km만 가면 된다고요! 제발! 대체 왜 안 태워주는 거야!"


모두가 매정하게 창문까지 올리며 지나가버리자 차 뒤를 졸졸 따라가며 짜증까지 내던 그녀는 한참 후 결국 한 명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까지 능숙하게 하던 그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으며 우릴 국경심사대까지 데려다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로 가득 찼던 하루.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이보다 더 알찰 수가 있을까.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호스텔에선 내 여행을 전부 통틀어 최고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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