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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06. 2020

1400만 원으로 14개월 세계일주,
후기 (4) 完

44개국의 44색 이야기

2016.12.07 ~ 2018.02.08 : 세계여행이 가르쳐 준 것



31. 아제르바이잔 - 양면성


“칭챙총!”


여행이란 게 당연히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사실 여러 모로 상당히 당황스러운 나라였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다가 킥킥거리며 비웃질 않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심심찮게 던져대질 않나. 심지어 교통카드를 충전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새치기를 하는 모습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버스를 탔는데 교통비가 없는지 나더러 대신 카드를 찍어 달라고 아제르바이잔어로 우기는 할머니도 있었고, 택시비를 갑자기 합의한 것보다 더 달라고 요구하더니 응하지 않자 마구 성질내던 기사도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외국인에게 친절하거나 궁금증에서 비롯된 관심을 보였다면, 아제르바이잔의 많은 사람들은 나를 놀림거리, 혹은 불쾌한 대상으로 대했다. 아르메니아에서 한류 파워를 톡톡히 맛보고 온 나는 이런 상황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아제르바이잔에 지쳐갈 때쯤 만난 케밥집 주인아저씨. 꽤나 시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시던 그 아저씨는 케밥이 입맛에 맞냐며 먹는 내내 신경을 써 주었고, 택시기사의 사기에 화를 내주었고, 정류장에서 버스가 올 때까지 같이 말동무가 되어 기다려주었다. 그밖에도 만원 버스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서 있자 본인 무릎에 대신 올려놔 준다고 기어이 뺏어가던 할머니, 나더러 비키라고 우기던 할머니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준 현지인들, 기사와 말이 안 통하자 선뜻 통역을 맡아준 아저씨, 택시에 놓고 내린 휴대폰을 기어이 찾아주신 셰키 홈스테이 주인아저씨. 안 좋은 사건들에 뒤덮여 하마터면 기억 아래에 묻혀버릴 뻔한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단지 하나의 경험만으로 어떤 나라를 싫어할 수만은 없는 건, 같은 장소에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아제르바이잔 - 바쿠



32. 조지아 - 그의 임기응변


“프랑스인이라고? 아닌데. 넌 피부가 까맣잖아?”


“아? 제가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요. 핫핫핫!”


사실 조지아 자체와는 크게 관계없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


조지아 시그나기의 길거리에서 어떤 커플이 별안간 영어를 할 줄 아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다는 나의 말에, 남자는 구세주를 본 것 마냥 환하게 웃으며 지금 막 도착했는데 괜찮은 숙소를 아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그 날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가 가격이 굉장히 저렴했기 때문에 그 커플을 데리고 갔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못해서 몸짓으로 대화하던 주인 할머니께 소개해 주었다.


조지아는 아직까진 엄청나게 관광화가 되지 않았다. 시그나기처럼 작고 한적한 마을에서 살아온 주인 할머니가 고지식한 옛날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엔 충분한 환경이었다. 커플 중 여자가 아제르바이잔 사람이라 할머니와 러시아어로 소통이 가능했고, 할머니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손님을 만나 반가웠는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 할머니에게 흑인 남자는 프랑스라고 대답했고, 다음에 이어진 할머니의 엄청난 인종차별 발언에 뜨악한 나와는 달리, 그는 내가 들어본 가장 재치 있는 답변을 남겼다.


사실상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며 흑인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동양인도 꽤나 많은 시선을 받는 마당에, 흑인에게는 아주 차별이 심하다고 들었다. 그는 그런 환경에서도 아제르바이잔에 꽤 오래 살았다고 했다. 아마 그 답변은 그가 이곳에서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 난감한 상황들을 헤쳐나가며 완성된 게 아니었을까.


차별은 그 의도가 어떻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글로벌 시대를 거의 겪어보지 못한, 이 할머니와 같은 기성세대라면 그 기준이 약간 모호해진다. 그들을 바꾸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고서,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그 순간을 넘긴 그 프랑스인이 갑자기 거인 같아 보였다.

조지아 - 카즈베기



33. 이스라엘 - 교과서 속 현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내가 12살 정도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영국에서 7학년을 다니고 있던 나는, 종교 수업에서 선생님이 노트 맨 앞장에 크게 ‘유대교’라고 적으라고 했던 날을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불교나 기독교/천주교밖에 보지 못했던 나에겐 굉장히 생소한 종교. 그 첫날 배운 것이 유대인들의 안식일 Sabbath였다. 그때만 해도 Sabbath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번 여행 중 이슬람교 국가들을 방문하게 되면서 나에겐 생소한, 다른 종교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일까, 관심도 없던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유대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루살렘의 호스트 디나의 집에 도착하게 된 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디나는 그들 가족의 Sabbath에 나를 초대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어머니의 환영사로 시작된 의식은 모든 사람들이 와인잔을 돌리며 한 모금씩 마시는 것으로 계속됐다. 모든 상점 및 교통수단이 전부 운영을 멈추고 (이 때는 실제로 아랍 택시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으로) 맞이하는 안식일의 기도, 절차, 음식 등은 지금껏 해온 카우치서핑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꼽힌다. 아직 세계의 다양함에 눈뜨지 못했던 열두 살의 내가 14년 후에야 겪게 된 소중한 기억.

이스라엘 - 텔아비브 카멜마켓



34. 요르단 -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택시기사


“어디로 가니? 택시 필요해?”


여행하며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호객행위. 특히 아랍권 국가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이 겪게 된다. 시장뿐만이 아니라 택시기사들도 조심해야 하는 대상 1순위. 하지만 요르단은 달랐다.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국경을 넘은 후, 수도 암만으로 가는 버스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어김없이 그 특유의 가짜 웃음을 머금고 다가오는 택시기사를 보며 또다시 마음을 단단히 다잡던 순간.


“암만으로 갈 건데, 택시는 비싸서 버스 탈 거야.”


“그래? 버스 정류장은 저 쪽으로 가면 돼!”


기사가 내 대답을 듣자마자 우길 생각도 없이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 주는 게 아닌가. 보통은 싸게 해 주겠다며, 혹은 버스가 없으니 택시밖엔 방법이 없다며 거짓말을 해 대는데 말이다. 어리둥절한 채 그 기사가 가르쳐 준 대로 길을 따라가자, 또 다른 택시기사가 접근했다.


“나 택시 말고 버스 타려는데…”


“아, 버스 정류장은 이쪽이야! 내가 데려다줄게.”


그 기사는 나를 버스 코앞까지 데려다주며, 심지어는 따라붙는 다른 기사들한테 얘는 버스를 탈 거라고 말하며 길을 터 주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고맙고 따뜻했던 요르단의 첫인상이었다.

요르단 - 사해



35. 오만 -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


“하하, 겁쟁이구나! 우리 오만 사람들은 4~50미터에서도 겁 없이 뛴다고!”


30미터가 넘는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겠다며 자신 있게 올라간 독일인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도로 내려오자, 쿠세이는 배꼽이 빠져라 그를 놀려댔다. 그에 의하면 오만 사람들은 이런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에 익숙해 그 정돈 별 것도 아니란다. (그러는 너는 왜 안 뛰는 건데?)


하지만 그의 말도 무시할 순 없었던 것이, 쿠세이와 압둘은 직업이 투어가이드가 아니라 연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막과 계곡, 오아시스의 길들을 다 꿰고 있었다. 사막을 뚫고 드라이브하는 운전 솜씨도, 텐트나 장비를 설치하는 노하우도, 불꽃쇼를 펼치는 실력도, 전부 수준급이었다.


그들이 누비는 자연은 빛나는 보석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 눈부시게 반짝인다는 점 이외에도, 전설처럼 꽁꽁 숨겨져 있었기에.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이름, 오만. 그 덕분에 이들은 깨끗한 냇물에서, 조용한 동굴에서, 탁 트인 사막에서, 골목대장이 된 마음으로 실컷 탐험을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구나 다 가보고 싶어하는 에펠탑이나 타임스퀘어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보다, 이런 알려지지 않은 보물상자를 열어보는 일에 훨씬 매료되어 버린 것은.

오만 - 수르



36. 아랍에미리트 - 빈부격차의 현실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평생 취직 걱정 없이 살아. 어차피 국가에서 꼬박꼬박 돈을 지급해 주거든. 굳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지만 만약 자의로 학업에 뜻이 있으면 모든 유학 경비도 다 지원해주고. 나도 현지인 친구가 몇 있는데, 정말 심심해서 취미로 일하는 정도? 국가에서 필요한 노동력은 외국인을 쓰니까.”


이름만 들어도 부유한 느낌이 물씬 드는 도시 두바이. 사실 아랍에미리트 부자를 찾아 카우치서핑을 해보고 싶었지만 이곳은 현지인 호스트를 (승낙은 고사하고)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대부분의 카우치서핑 멤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라, 나의 호스트 하이쌈은 이집트인, 그리고 부르즈 칼리파를 구경시켜준 에드가는 레바논인이었다. 


그저 화려한 줄만 알았던 두바이였지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온갖 고층 빌딩들이 들어찬 도심을 벗어나 사뭇 분위기가 다른 외곽으로 한참을 달리면, 그곳엔 하이쌈이 사는 외국인촌 인터네셔널 시티가 있었다. 거대 쇼핑몰에 줄지어 입점한 깨끗한 레스토랑을 떠나면, 허름한 구석에는 인도인 노동자들이 찾는 저렴한 인도 음식점이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이 걱정 없이 소비하고 즐기는 동안,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라를 굴러가게 하는 듯한 형상이었다.


겉보기에 휘황찬란한 관광지도 내부의 삶을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아랍에미리트 - 두바이 부르즈칼리파



37. 태국 - LGBTQ에 끼치는 불교의 영향


“태국인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차별의 시선으로 보지 않아. 윤회사상을 믿기 때문에 다 그들의 전생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거든.”


방콕 호스트 제이에게 보수적인 아시아에서 유독 태국이 LGBTQ에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색다른 발상이라 그에게 불교 관련 질문을 꼬치꼬치 해댔다. 그러고 보니 제이를 따라 어떤 로컬 모임에 갔을 때에도, 참가 인원의 50% 가량이 동성애자거나 트랜스젠더였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이 전생에 손으로 나쁜 짓을 했다고 치면, 그에 대한 업보로 손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든지- 그런 식이야. 동성애자 같은 경우는 전생에 배우자에게 바람을 피우거나 몹쓸 짓을 했을 때, 어려운 사랑을 겪어보게끔 태어난 거고.”


모든 사람이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고 반성하기 위해서 현생에 특정 어려움을 겪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서로를 비정상적으로 보거나 혐오의 시선으로 마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논리의 옳고 그름을 다 떠나서,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안다는 것은 사실상 대단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 - 빠이



38. 라오스 - 로컬 상업 활성화의 중요성


“요새 한국에선 라오스가 정말 핫해. 관광 산업이 잘 돼서 좋지 않아?”


“그렇긴 한데… 그래서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 게다가 7~80%는 외국 투자 자본이라서 라오스 사람들에겐 거의 도움이 안 돼.”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호스트 시드는 직접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나를 재워줬다. 그가 대접하는 아침을 먹으며 들은 대화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공산주의에서 개방된 이후 엄청난 속도로 관광화된 라오스는, 급속도로 오른 물가에 비해 임금이 너무 낮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의 최저임금은 한 달 10만 원 정도.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기념품 가게도 죄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현지인들이 관광 산업으로 얻는 이득은 거의 없다고. 시드는 현지인 숙박업을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시장을 점령한 중국산 공산품 사이에서 로컬 산업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산악 민족이 만든 수공예품을 직접 사 와서 대신 팔아주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여행객으로서 좀 더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편리함을 앞세운 나머지 이런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뗐다.


“예를 들어, 투어 상품으로 온 중국인들은 중국인이 지은 호텔에서 자고, 중식당에서 밥을 먹고, 중국 투어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중국인 가게에서 기념품을 사. 결국 라오스에 남는 돈은 하나도 없는 거지.”

라오스 - 루앙프라방 꽝시폭포



39. 베트남 - 전쟁의 아픔을 이겨낸 국가


“식민지배를 했던 프랑스나, 베트남 전쟁을 지원한 미국, 한국이 싫지 않아?”


“전혀. 과거는 과거잖아. 아무도 그들을 싫어하지 않아.”


베트남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련된 국가에 대한 혐오감이 전혀 없는 이곳. 다낭 호스트 코아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 되지 않은 베트남 전쟁은 아마 이들의 부모 세대가 다 실제로 겪었을 텐데, 어떻게 악감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걸까.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배경과 후속 대처가 아주 많이 다르다. 악감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경우.) 


르완다도 마찬가지였다. 내전 때 피 터지게 증오하며 싸웠던 두 부족은 이제 과거를 털고 서로를 용서해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고 평화를 추구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감히 짐작조차 안 가는 얼마나 많은 갈등과 노력이 있었을지- 새삼 대단해 보였다.

베트남 - 하노이



40. 캄보디아 - 대학살의 산 증거


“캄보디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크메르루주 대학살의 후유증을 앓고 있어. 우리 엄마만 해도, 온 가족이 전국의 다른 수용소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겨우 초등학생밖에 안 된 나이에 몇 날 며칠을 무작정 걷고 걸어서 집을 찾아 돌아왔대.”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40년밖에 안 된,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대량학살이다. 이때 가족 구성원을 한 명도 잃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그 직〮간접적 피해자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호스트 윈드는 킬링필드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께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경험담 때문에, 오히려 박물관에 적힌 설명은 빈약해 보인단다. 굳이 그걸 읽지 않아도 모든 장면들이 생생히 펼쳐진다며.


세계여행이 나에게 정말 뜻깊었던 또 하나의 이유. 내가 주체적으로 관심 갖지 않으면 잘 몰랐던 각국의 역사나 아픔을 자연스레 접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 타인의 환경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 현재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무관심 속에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꼈으면 좋겠다.

캄보디아 - 시엠레아프 앙코르와트



41. 싱가포르 - 법의 엄중함


“예전에 어떤 서양인 할머니가 싱가포르에 입국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맡긴 짐을 받아준 적이 있었어. 그 안에선 마약이 적발됐고. 그 할머니는 바로 교수형에 처해졌어.”


“뭐? 하지만 그건 너무 억울하잖아. 알고 한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어. 한 명 한 명 사정을 봐주면 자꾸 예외가 생기게 되니까.”


진시황의 진나라가 연상되는 싱가포르. 아주 엄격한 법을 지키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껌 때문에 길바닥이 더러워진다고 껌을 판매조차 하지 않는 나라.


아주 흥미로운 국가였다. 세상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나라를, 싱가포르는 가볍게 뛰어넘는다. ‘도태되기 싫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시스템에 모두가 순응한다. 열심히 살지 않는 이에겐 가차 없는 대신, 열심히 살면 성공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만큼 결과가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건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의 말에 싱가포르 친구 이안은 딱 잘라 대답했다. 싱가포르의 규칙에는 ‘하지만’이나 ‘예외로’ 같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다.


“여긴 물가가 비싸니까 최저시급도 높겠지?”


“아니, 최저시급 같은 건 없어. 돈을 잘 벌고 싶으면 더 노력하면 돼.”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부정부패 같은 게 전혀 생기질 않아?”


“응. 고위직은 애초에 연봉이 엄청 높거든. 그러면 뇌물 따위에 이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걸 정도의 모험을 아예 하지 않아.”


어정쩡한 법이면 애초에 행하질 말고, 행할 것이라면 아예 제대로 하라.

싱가포르 - 싱가포르 피나클앳덕스턴



42. 말레이시아 - 여행을 마치며


마지막. 끝마디가 미묘하게 먹먹해지는 말.


큰 기대 없었던 나라가 천국마냥 좋아 보이는 반전을 선사할 때.

예상치 못했던 인연이 평소보다 뜻깊게 다가올 때.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나중에 그리워질 것만 같을 때.

끝날 줄 몰랐던 여행이 어느덧 엔딩 크레딧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지막이라는 말의 울림이 조금은 더 길어졌으면 하는 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 사진이 마지막임을 깨닫고 아쉬움을 느꼈다면,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느꼈던 감정 역시

그와 비슷한 선상에 놓여있지 않았을까.

말레이시아 - 랑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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