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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Feb 18.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10. 소금 사막과 첫 한국인 동행들

[볼리비아, 우유니]

1월 1일 밤, 아타카마에서 우유니로 가기 위해 어김없이 장거리 야간 버스에 올랐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선비자를 받아야 했던 국가 볼리비아는 국경 심사가 까다롭다고 들어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쉽게 입국이 됐고, 끝없는 이동 후에 나는 작은 마을 우유니에 도착해 있었다.



이 곳에서의 카우치서핑은 약간 특이했다. 호스트의 가족이 호스텔을 다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빈 방을 무료로 내주는 대가로 호스텔의 일을 아침에 이것저것 도와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예전엔 장기로 이런 wwoofing이나 workaway를 해보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던 터라 마다하지 않고 수락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던 호스트 다니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이미 호스텔 일을 돕고 있던 브라질 여행객 가브리엘을 불렀고, 가브리엘은 능숙한 영어로 내게 방을 안내해 주었다.


커다란 침대가 두 개나 놓여있던 아늑한 개인실. 공용실이 아니라는 것에 내심 감사하며 나는 가족과 식사도 함께했다. 가브리엘은 멕시코인 여자친구 레즐리와 함께 브라질에서 멕시코까지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세계가 참 좁은 게, 그들은 내가 오기 직전까지 브라질의 포즈 도 이과수에서 나와 같은 호스텔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거기서 만난 친구 로드와도 이미 서로 알고 있었다. 이들은 청소 선배로서 내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며 아침마다 호스텔 대청소를 주관했다.



라오스의 방비엥이 그랬듯 우유니 역시 한국인들에게 하도 인기가 많은 터라 거의 코리아타운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투어사들이 즐비해 있는 길거리로 가면 하나도 빠짐없이 한국어로 홍보 문구를 걸어두었고, 그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대부분도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늘 카우치서핑과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중시하던 나는, 이례적으로 이곳에서 한국인 동행을 구하게 되었다. 우유니 사막 투어에 가기 위해선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 저렴하기도 했고, 남미를 여행하는 다른 한국인들과 얘기해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결론적으로 여기서 만난 동행들 4명은 대성공. 독특하고 소탈한 각자의 캐릭터 덕분에 3일간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유니 시내를 돌아다니며 다니엘이 추천해준 라마 고기를 먹어보기도 했고, 시장에서 힘겹게 구한 재료로 갈비탕을 끓여 먹기도 했으며, 너무 작은 시골마을인 탓에 밤에 연 술집이 없어서 술을 구하러 하릴없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의 하이라이트, 우유니 사막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투어사에 우르르 몰려가 끈질기게 흥정을 시도한 결과 우린 저렴한 가격으로 스타 선라이즈 투어와 데이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우유니 사막- 늘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이곳을 실제로 본 감상은 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스타 선라이즈 투어는 날씨 운이 안 좋았는지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어서 지프차에 쭈그려 잠만 자다가 돌아왔는데, 데이 투어로 본 대낮의 새하얀 우유니는 경이롭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었다. 순백으로 물든 배경 속 그 어디서든 사진을 찍어도 마냥 아름답게 나오던 곳. 그렇게 사막에서의 몇 시간 동안 우린 내내 “미쳤다, 미쳤다!”를 연신 외치며 몇백 장의 사진을 남겼고, 그럼에도 질리지 않아 장소를 이동할 시간이 될 때마다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투어를 마친 날 저녁, 먼저 버스로 떠나야 했던 나는 동행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며 속이 아려오는 걸 느꼈다. 한국인들의 정이란 게 뭔지, 3일 간 끈끈해진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작별을 하려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나머지 네 명은 쭉 같이 이동할 예정이었으니 괜스레 더 부러웠던 걸까. 그들의 따스한 배웅을 받으며 오른 라파즈행 야간 버스는 평소보다도 더 외롭고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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