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지나간다. 지긋지긋하고 답답하고 왠지 모르게 억울했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훗날, 나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볼 때 꼭 빼놓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올 한 해는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절대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두운 그림자에서 조금씩 벗어나기도 했고, 반대로 곧게 뻗은 길을 벗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이게 맞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2020년의 끝자락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을 보면, 나를 둘러싼 소용돌이는 내년에도 늘 내 옆에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다. 인생이란 게 게임처럼 시작과 끝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하루아침에 기적과 같은 멋진 인생을 얻게 될 리도 없었다. 게을렀던 어제의 나는 그 내일도 여전히 게을렀고, 어제의 나를 괴롭혔던 슬픔은 그 내일도 나를 괴롭게 했으며, 저 멀리 빛나던 꿈은 여전히 저 먼 곳에 자리할 뿐이었다. 내게 바뀐 것이라곤 단지 오늘을 가리키는 숫자 몇 개였을 뿐, 나는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래서일까. 이제 더 이상 '새해'라는 것에 예전만큼 설레임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새해와 함께 찾아오던 막연한 희망이란 것이 아주 붉고 선명해 손에 잡힐 듯하지만 사실은 아득히 멀고 먼, 절대 닿을 수 없는 태양과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똑같을 것이기에. 오늘 방황했던 이 길에 내일도 똑같이 서 있을 것이기에 희망은 내일도 여전히 아득한 희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시간이 흐르면서 얻게 된 연륜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 한심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구절절 한 해를 보내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버리지 못한 자그마한 미련이 내 안에 남아 있나 보다.
내가 바라는 건 이 소용돌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소용돌이를 한순간에 없애 버릴 기적 같은 능력이 내게 생기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이 폭풍 속에서 조금 더 잘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맑은 하늘이 보이고 찬란한 무지개가 보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일의 내가 부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나이기를,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나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