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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pr 03. 2023

수원에서는 통닭을

KT위즈파크

올해 우리 가족의 목표는 '전국 야구장 투어' 이다. 결혼 전 무려 20년 이상을 잠실 종합운동장 근처에 살았음에도 야구장에 가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야구 팬이 되었는지.

중딩 첫째군은 야구부가 유명한 초등학교에 다녔으나 전혀 관심이 없다가 오히려 다른 학교로 전학 온 이후에 야구를 배우게 되었다. 우연히 학교에서 생활체육 수업을 듣게 되면서 야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마침 그 때 담당하시던 선생님이 야구 선생님이어서 선생님을 따라 방과후 야구 수업도 듣게 되었고 결국 요즘은 주말에 4시간씩 야구를 배우러 다니는 야구소년이 되었다.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빠가 응원하는 'LG트윈스'의 팬이 되었으니, 야구장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하여 친구들, 친구 엄마들과 함께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본 것이 작년 6월쯤. 그 때 갔던 곳이 바로 수원 'KT 위즈파크' 였다. 나는 야구 볼 줄도 모르면서 오로지 치맥을 먹겠다고 따라갔었는데 그 날 엘지 선수들이 만루홈런을 빵빵 터뜨리며 신나게 경기를 이기는 것을 보고 야구가 참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매번 그렇게 이기는 것은 아니고 그 날은 유독 재미있는 경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었던 야구장에서 먹는 치맥의 맛.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 번 야구장에 갔었는데 아장아장 계단을 오르내리던 둘째군 손을 잡고 무릎 아프게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돌아다니다가 아이들 치킨 먹인다고 한참 동안 발골 작업에 열중하다가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니 7회말 이었던. 대체 나는 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서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던 야구장인데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함께 즐기게 되니(함께 즐긴다기 보다는 내가 배우는 입장)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나를 야구장으로 인도해 주신 언니들은 가자마자 시원한 생맥주를 손에 쥐어주고 1인 1 통닭이라며 치킨 한마리를 봉지째 안겨주었으니, '아 뭐 이렇게 많이 시켰어요...' 하다가 이거 왜 이렇게 맛있냐며 나도 모르게 봉지를 반쯤 비우고 있었다.

치킨보다는 통닭이지

그저 바삭하게 갓 튀긴 옛날 맛 후라이드. '치킨'보다 '통닭'이라는 이름을 쓰는 가게가 특히 이렇게 옛날 맛이 나는 것 같아 좋다. 이름도 친근한 통닭. 나는 치킨 세대이긴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페리카나, 멕시칸 치킨 같은 브랜드가 유행했던 것 같은데. 나에게 그다지 추억의 맛은 아닌 봉지 통닭이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야구장과 함께 신나는 여름, 가을을 보내고. 야구 없는 긴긴 겨울을 지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개막전 일정이 나왔다. 표 구하기는 또 어찌나 힘들었던지. 정시에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갔음에도 겨우겨우 스카이존 맨 꼭대기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어떤 자리가 좋을지 나름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무척 속상하긴 했지만 막상 경기장에 도착해 보니 오히려 잘된 것 같다. 낮경기는 최대한 뒤쪽으로 예약할 것. 처음 우리가 앉았던 스카이존 중간 자리도 햇빛을 가려주어 좋다고 했으나 시간이 점점 지나 햇빛이 경기장 안으로 깊숙히 들어오게 되자 이글이글 익기 시작했다. 결국 보다 뒤쪽에 있는 친구 자리로 이동했다. 앞자리도 군데군데 비어 있는걸 보니 대부분 햇빛을 피해 뒤에 서서 보시는 것 같았다. 낮경기는 최대한 맨 위쪽 뒷자리로 예매하는 것이 좋겠다.

개막전은 개막전인가보다. 주차장도 겨우겨우 예약하고, 무려 2시간 전에 도착했으나 주차장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사람이 많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경기장을 상상하고 갔는데 웬걸. 이미 바글바글 하다. 모두들 기다리고 기다린 개막전. 전국 모든 야구장이 티켓이 매진이라더니 역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하자마자 ‘통닭’을 사러 직행했다. 아날로그형 인간인 나는 무조건 가게 앞으로 가서 주문하려고 얼굴을 디밀었으나 '키오스크나 QR코드를 이용해서 주문하시면 되요' 라고 하신다. 다행히 우리는 일찍 갔기에 대기시간이 길지는 않았는데 주차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들어온 지인들은 QR코드로 주문을 미리 했음에도 대기시간이 1시간 이상이었다고 하니 야구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통닭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음식 주문까지 모두 완료하고 자리에 앉아도 이미 한시간 이상 남았다. 여유있게 경기장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순살은 아니지만 한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로 아이들이 집어 먹기에도 좋았다. 이 맛이 그리워서 작년 가을에 수원 화성에 가면서 '진미통닭' 본점에 갔었는데 그 때 맛본 갓 튀긴 통닭의 바삭함보다는 조금 덜하긴 하다. 그래도 야구장에서 사먹는 치맥 중에는 여기가 최고일 것이라며.


치킨이 살짝 느끼해질 때쯤 함께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보영만두'의 쫄면과 튀김군만두 이다. 집 근처에도 있어서 가끔 사먹곤 하는데 야구장에서 먹는 맛은 또 새롭다. 여기서는 세트 메뉴만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는 군만두1+쫄면1 세트를 주문했다(쫄면2개인 세트를 사지 않은것을 후회함). 쫄면은 맵기 선택이 가능한데 중간맛으로 선택했으나 매운음식 잘먹는 아이들이 꽤 매워 했다. 순한맛으로 주문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입이 빨개지면서도 '맛있다'를 계속 외치며 참 잘도 먹는 둘째군.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컸던 경기였다. 열심히 응원하려고 배도 든든히 채웠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 하지만 이제 막 시즌이 시작되었을 뿐이니 앞으로 점점 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올 한해 우리 가족이 전국 방방곡곡 따라다니며 열심히 응원할께요. 엘지트윈스 화이팅! 2023 프로야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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