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또 다른 세상에서 혼자 살고 있을 나에게

사진 한 장이 건넨 인연의 초대장

by DayRewind

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나누는 것 같아

이번엔 조금 가벼운 이야기 하나 들려보려고 한다.

학창 시절, 처음 인사하러 들어온 교생선생님에게

첫사랑을 묻던 것처럼.

오늘은 그런 식상하지만 은근히 궁금한

내 결혼까지의 연애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관심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어쩌면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가볍게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남의 연애 이야기만큼

편하게 즐길 만한 이야기는 없을테니깐.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이미 한 번의 소개팅을 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한 시간 반쯤 대화를 나눈 뒤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나의 소개팅 경험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나만의 소개팅 정석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면

보통 첫 만남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자리라서

커피 타임으로 가볍게 분위기를 살펴보고

서로가 괜찮다고 느껴지면 애프터로 이어지는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방향의 소개팅 흐름이었다.


그날도 나쁘지 않았고

애프터를 얼추 약속해 놓은 만남으로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이틀쯤 지났을까

오래 알고 지낸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빠, 만나는 사람 있어요? 소개팅할래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망설이던 중

그녀는 재빠르게 소개팅 상대의

사진까지 보내며 결정을 재촉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윙"


진동과 함께 도착한 사진 속 미녀는

나의 판단력을 잠시 흐리게 했고

나는 그 미끼를 문 물고기가 되어버렸고

망설임은 그 사진 한 장으로 무너져버렸다.


(물론 그 사진 속 인물과 현실은 조금 달랐고

그녀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며칠 전 소개팅의 여운이 남아 있긴 했지만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이 정도면 손해 볼 건 없지'라는 생각과 함께

기대 없이 다른사람을 만나보자고 결심했다.

아직 누군가와 사귀겠다고 약속한 건 아니니깐


연락처를 받은 시간은 밤 12시가 가까웠고

예의상 다음 날 연락하려 했지만

주선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날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DayRewind입니다.
연락처 받고 소개팅 날짜 정하려고 연락드려요."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나는 평소 소개팅 전 불필요한 카톡은 자제하고

만나서 얼굴 보고 대화하는 걸 선호했기 때문에

간단히 장소와 시간만 정해 마무리하려 했고

"합정역 5번 출구에서 5시에 만나요"

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나이, 직업, 출퇴근 시간 등

기본적인 질문들이 이어졌고

새벽 1시쯤 넘어 졸린 시간이 되어서야


"맥커터해서 죄송한데, 시간이 늦어서 자야 할 것 같아요"


라며 대화를 끊었다.

약속잡은 소개팅만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같은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일 얘기부터 밥, 디저트, 잠드는 습관까지

4일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감자과자 취향.

우리는 포테이토칩을 최고의 감자칩으로,

포카칩은 느끼하다는 이유로

2순위로 밀어내는 공통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별거 아닌 취향이 내 마음에 들었었다.


주량도 아닌 과자취향으로
상대방과 어울린다 생각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처음 본 사진만큼의 외모는 아닐 수 있지만

분위기만 비슷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사진이랑 완전 딴 사람이지만 않으면 무조건 사귈거야"


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 빠져 있었고

심지어 만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자 한 조각만 먹고 헤어지자고

우스갯소리로 약속까지 나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대화들이 그렇게까지 웃길 일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정말 배꼽 잡고 웃었다.

그때부터 콩깍지가 씌었던 것 같다.


그 선택이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날, 사진을 받고 소개팅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또 다른 세상의 나는

여전히 혼자였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매 순간

Yes or No로 갈리는 선택의 연속같다.


그날의 'Yes'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