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현실의 경험치에서 도망쳐 가상세상의 속도 도파민에 빠져버리다.
나는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컴퓨터 없이 못 사는 사람이랄까.
일도 컴퓨터로 하고
취미도 대부분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컴퓨터를 달고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컴퓨터를 통한 당구는 잘하지만
내 손으로 하는 당구는 못하고
컴퓨터를 통한 모든것은 자신있지만
내 손으로 직접하는것은 확신이 없는 그런 사람
그렇다고 개발자는 아니다.
그저 사무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해 먹고사는 사람이다.
나는 결혼 이후 오히려 게임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엔 데이트에, 운동에, 여자친구와의 메신저 대화에
시간을 쓰느라 게임할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나만의 시간이 확실히 보장되니까.
물론 이건 아내 덕분이고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결혼 후 자유로운 시간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입하게 되었고
요즘 게임들이 워낙 정교하고 몰입감도 높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을 게임으로만 보내고 나면 늘 허무하다.
개발적인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하루를 잘 놀고 나서 느끼는 공허함.
놀면서도 만족스럽지 않고
불안한 이 감정은 대체 뭘까.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내가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성취감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의 성장은 느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연차가 쌓인다고 상승한 업무능력은
확연히 보이진 않고 연봉도 내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다.
요즘 같은 불황에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실력이 늘면 계급이 오르고
숫자와 랭크로 성장 곡선이 그려진다.
누군가에게 지면 분해서 더 잘하고 싶고
이겨내면 짜릿한 성취가 따라온다.
현실보다 훨씬 빠르고 명확한 성장의 증거들.
"랭킹"
경쟁을 통해 나의 우위를 입증하는
게임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도
어쩌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성장속도를
게임에서라도 증명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말로는 나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며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회화 사이트를 뒤지며
어떤 영어선생님에게 배울까 찾아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원어민들이 가르쳐주는
영어회화 유튜브도 찾아봤지만
일주일도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게임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하고 있건만
오늘은 머릿속 생각만 하고
성장이 느리단 이유로
실행하지 않는 나를 위해
구글 캘린더에 영어회화 알람을 등록했다.
하루 30분부터 시작해서
점점 시간을 늘려보자는 생각으로.
작은 습관이 큰 변화를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지만
게임을 내 본업으로 만들어서
인터넷방송을 하겠다고
도전하지 않는 이상
자유시간을 좀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조정하여 나를 위해 투자하고 싶다.
영어 공부 하나로 내 삶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성급하지 않게,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해내는 데 익숙해지고 싶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성장.
욕심은 넘쳐나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현실의 속도에 맞춘 균형감각이다.
올해는 현실에서의 나의 성장 속도를 찾고
천천히 성장하는 속도에 익숙해지고 만족하는법을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다.
천천히 성장해도 높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느려도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끈기를 가진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