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에서 늘 멈추는 내 이야기
나의 10대는 음악이었다.
공부해야 할 시간, 학교가 끝나면
쏜살같이 노래방으로 향했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친구들이 떡볶이와 닭꼬치를 사 먹을 때
나는 그 돈을 아껴
친한 친구 한 명과 노래방에 가는 데 소비했다.
그땐, 꿈이 가수였다.
그 시절, 내 또래 남자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노래방에서 김경호, MC The Max
같은 가수의 고음 파트를 부르며
포스트 김경호가 되길 꿈꿨다.
나도 그랬다.
한 곡을 음의 갈라짐 없이
깔끔하게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노래방에서 반복했고
마치 그날 공부한 영어, 수학과목을 복습하는것처럼
집에서는 잠들기 전까지 방에서 조용히 흥얼거렸다.
다행히 내 방은 2층이라 부모님이 직접 듣진 못했지만,
흥얼거림속에 나오는 고음은 은근히 아래까지 퍼졌다.
그래서 밤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줘라"
하는 단속을 자주 듣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잘난 비주얼을 가진 아이돌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었고
대학가요제에 나가 실력파 가수로 뽑혀
입상한 후 가수의 길을 걷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 꿈을 진지하게
부모님께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 정도로만 보였던 나.
애매한 위치에서, 명확한 행동 없이 10대를 흘려보냈다.
도전의식에 대한 생각은 품어보지도 않은 채로
10대가 끝나고 20대가 시작되던 무렵
나는 가수가 되는 게 어렵다는 걸 받아들였다.
오디션 하나도 보러 가지 않은 나약한 자신을 돌아보며,
가수보다는 음악을 조금 더 깊게 탐구할 수 있는
작곡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작곡가라는 꿈은 내게 유일하게
"정말 하고 싶다"는 의욕을 주는 분야였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이과 출신이었던 나는 작곡 관련 지식도 없었고,
"작곡을 하고 싶어요"
라는 말만 부모님께 꺼낸 뒤엔
일단 대학을 먼저 가자는 부모님의 설득을 따라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20대의 나에게도 도전의식은 부족했다.
그렇게 꿈을 말로만 내뱉고
행동으로는 안정성부터 추구하는
회피적인 기질이 나를 지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도전하기보단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먼저 떠올리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유튜브나 방송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결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나는 부러움을 느끼고 나 자신에겐
왜 그런 용기가 없을까, 자책을 하게 된다.
지금은 결혼도 했고
30대 후반을 지나 40대를 향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옅어졌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벌고 싶다'는 바람조차
젊을 때나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코로나 이후로 강제 백수가 되고 나서
야심차게 도전했던 한 번의 직업 전환 실패는
나의 도전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결국 마음속의 꿈조차 현실 앞에 눌려 작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엔 늘 이런 질문이 떠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 행동이
정말 '꿈'이라 부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철없는 욕망인지.
언젠가 내가 정말 원하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그땐 용기 있게 한 번쯤 제대로 부딪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어설펐던 지난 시간들을 뒤로하고
거짓된 욕망과 꿈 사이에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