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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있기에 마음이 자랄 수 있었다

조각 피자에 담긴 부모의 마음읽기

by DayRewind

요즘은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와 부모 사이의 어려운 관계를 다루고

솔루션을 제시해주는 장면들이 낯설지 않다.

그런 방송을 보다 보면

나도 부모가 된다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를 대해야 할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소소하지만 잊히지 않는 이야기

집안에서 첫째로 태어나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있던

나는 유독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기특했고

금쪽이 같은 아이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우리 집은 유복하진 않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며 알뜰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불같고 단호한 성격

어머니는 그 반대로 모든 걸 감싸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쉽게 말하지 않았고

감정을 숨기거나 돌려서 표현하는 아이였다.


언제부터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기억 속 가장 또렷한 장면은 초등학교 입학 전

대략 다섯 살 무렵의 일이다.


명절을 맞아 시골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모두가 배고프던 그 시간.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조각 피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말도 꺼내기 전, 엄마가 물었다.

"아들, 피자 먹고 싶어?"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고

엄마는 피자 한 조각을 주문했다.

입은 두 개지만 피자는 한 조각뿐.


주문한 피자가 나오자마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입 크게 베어 물었고

먹는 도중 문득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먹고 싶어 보여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한입 먹을래?"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는 괜찮아, 너 혼자 먹어."


온전한 한 조각을 아이에게 먹이려던 그 장면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어렸을 때 나는 그런 기억으로부터

'우리 집은 돈이 부족하고, 나는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던 것 같다.

피자 한 조각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절제 주문인지도 모른다.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피자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엄마는 늘 미안해했다.

"그때 한 입만 먹었어도 상처를 안 줬을 텐데"

라며, 사실은 정말 먹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부모의 시선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환경 혹은 부모 사이의 불화 등

나 역시 그런 가정에서

일찍 철이 든 아이가 된 것이다.

비슷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지만

내가 과거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기특하다, 잘컸네 "


누군가는 아이를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키워주셨고

덕분에 그 어린아이는 피자 한 조각도

엄마와 나누고 싶어 했으며

표정에서 원하는것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시절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 있는 부모님께도 말해주고 싶다.

"충분히 사랑받았습니다. "

애늙은이어도, 잘 자라고 있는거라고.

그 시절도, 지금도 충분히 좋았다고.


"부족함이 있었기에, 마음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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