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면 거인마을
10월 끝자락 즈음,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거인(巨人) 마을에도 가을이 왔다.
동상면은 고지대에 위치해있어 시내권보다 1~2도는 기온이 낮다. 햇살이 눈부시고 앞, 뒷산이 울긋불긋하건만 공기는 차갑다. 큰 숨을 들이켜니 페가 말개진다.
마을 곳곳 마당에는 너른 깨가, 새빨간 고추가 말라가고 집에서 야무지게 깎은 감은 대롱대롱 달려 까맣게 말라가고 있다. 내 한 몸을 발가벗어 맛 좋은 곶감이 되기 위해서.
거인마을의 최고령 어르신이신 강순희(95) 할머니는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밭을 일구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을날과 퍽 잘 어울린다.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산다.
"귀가 안 들려. 언젠가부터 귀에서 괴물 소리가 나."
세월이 가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말씀도 잘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시다.
“내가 열일곱에 시집왔어. 시방 구십다섯이야. 이 마을서 60년 넘게 살고 있지. 아버지가 기집애라고 공부 안 시키고 산속으로 시집보낸 거야. 고향이 삼례인데 가마 타고 버스 타고 다시 고산면에서 가마 타고 여까지 왔어."
할머니 이마 한가운데 단단한 종기가 있다. 손을 대면 돌가루가 떨어질 거 같은 작은 바위 같은 상처.
순희 할머니는 이마의 종기를 가리키면서 낯선 객에게 말씀을 이어간다.
"뭐가 나더니 병원 가도 이게 잘 안 없어져. 뵈기 싫어. 나 사진 찍기 싫어. 이런 꼴로 뭔 사진을 찍어."
방 안에서 마늘을 까던 며느리가 슬그머니 마루로 나왔다. 드릴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허둥지둥 냉장고에서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꺼내어 준다. 떫으면 어떡하나, 라며 직접 딴 홍시도 내어준다.
"시골에서만 살았더니 이제 도시로 좀 나가보고 싶어요. 근데 나가면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아들은 양파를 심을 땅을 일구고, 노모와 며느리가 마루에 앉아 그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가을날과 퍽 잘 어울린다. 홍시는 입에서 녹고, 주스도 참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