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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愛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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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Feb 15. 2020
오늘의 한컷: 우리 사무실 옆에는 어린 아이들이 노는 공동육아나눔터가 있다. 사진은 아이들이 놀던 흔적.
어린아이들은 늘 인형을 하나씩 품에 안고 있다. 아이는 이런 애착관계를 형성한 사물들과 감정적 소통을 하며 안정감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애착 인형.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적 끝내주는 애착 인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똘똘이였다. 지금도 판매되는 아기 모양의 인형 시리즈인데 당시가 90년대였으니 초기 버전쯤 되겠다.
요새야 기술이 좋아져서 똘똘이가 옹알이도 하고 응애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던데 당시 똘똘이는 눈을 깜박이고 우유병을 입에 대면 '꼴깍꼴깍(?)' 하며 우유를 마시는 수준이었다.
허나
당시 초등학생에게 이것은 혁신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
똘똘이는 아파트 상가 문방구에서 만났다. 투명한 상자 안에 들어있는 똘똘이를 본 후로 난 그 녀석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엄마는 시내에 있는 도매 문구점에서 사주겠다고 했지만 안달 난 나를 이기지 못해 결국 아파트 상가 문방구에서 거금을 치렀다.
똘똘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던 길이 어렴풋 떠오른다. 날씨가 좋았다. 난 개선장군 마냥 당당하고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걸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야호!
그날부터 똘똘이는 나와 한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됐다. 옷도 사줬고(물론 엄마가 사줬지만) 우유도 먹여줬다. 엉덩이를 토닥여주기도 했다. 포대기를 메고 업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내가 밤낮으로 똘똘이를 안고 다니자 엄마가 동생을 만들어줄까라고 물은 적도 있었다. 내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 절대. 난 막내가 좋아.
인형 얼굴이 많이 상했네..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난 똘똘이를 친구 임에게 줬다. 임네 개가 인형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똘똘이 잘 부탁한다.
걘 내 친구야.”
“야, 리베(개 이름)가 잘근잘근 물어뜯을걸.”
“끝이 고통스럽지만 않게 해 줘.
아멘.
”
그렇게 역할의 계승이 이뤄졌고 그 이후 똘똘이의 운명은 알지 못한다. 아마 물리고 찢겨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어릴 적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대상을 개의 인형으로 던져줬을 때 난 슬펐을까?
아니. 똘똘이를 대체할 무언가는 계속해서 생겨났으니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때로는 물건이 됐고, 때로는 사람이 됐다. 지금은 똘똘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한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됐으니 말이다.
애착 (愛着)_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
문득 사전을 찾아봤다. 애착이란 단어가 이토록 아름다운 뜻이라니.
내가 애착하는, 나와 한 이불 덮는 그에게 앞으로 똘똘이처럼 해줘야지. 우유도 먹여주고 엉덩이도 토닥여주고 포대기를 메고 업고 다니긴.. 많이 힘들 거 같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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