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단상

집 꾸미기보다 집과 친해지기

by 유스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벌써 결혼하고 두 번째 집이다.

첫 ‘내 집’이 생기면서 #집꾸미기 #인테리어를 검색해보는 시간이 늘었다.

거실에 러그를 깔아볼까, 베란다에 마크라메를 달아볼까. 어떤 때는 길거리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와 침실에 달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인테리어는 무슨, 그냥 깔끔하게나 살자라는 것이 요즘 드는 생각.

다른 사람들의 온라인 집들이를 보다 보면 감탄은 나오지만 그 감탄이 나를 실행으로 움직이게 하진 못한다.

왜일까?

게으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 집’에 산 경험보다 ‘남의 집’에 산 경험이 많아서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못 하나 박기 어려운 남의 집 살이에서 인테리어라는 건 욕심이었고,

그냥 있는 그대로에서 사는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배어버린 탓이다.


결혼 전 내가 살던 전셋집은 70대 부부가 살던 곳이었다.

지어진지 20년은 더 된 낡은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건물이었지만

교통과 집 구조, 비용을 생각하면 최적의 아파트였다.

부동산에서는 ‘올 리모델링’이라고 했고, 집은 할머니의 취향을 한껏 반영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이 새롭게 도배한 화려한 꽃무늬 벽지 천지였다. 그것도 빨간색 꽃.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집안 지천이 꽃밭이었다.


첫인상부터 그리고 그 집에 사는 기간 내내 그 빨간 꽃무늬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었지만

‘남의 집’에 굳이 내 돈 들일 필요 있나 라는 생각은 나에게 참을성을 키워주곤 했다.

예쁜 벽시계를 하나 살까 싶어 인터넷을 몇 시간씩 검색해보다가도 꽃 벽지 위에 어울릴만한 시계는 없었고, 그래서 그냥 대충, 무난하고 저렴한 걸 사곤 했다.

새하얀 호텔식 침구를 사고 싶었지만 이 역시 집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이불도 대충, 엄마가 홈쇼핑에서 사준 꽃무늬를 덮고 잤다.

예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순간적인 욕구만 참아낸다면 이런 생활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덕분인지 남의 집에 살던 나는 타의에 의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게 됐다.

디자인보다는 실용, 거기에 가격이 저렴하면 금상첨화. 그것이 월세와 전셋집을 돌아다니며 형성된 내 취향이었다.



결혼하고 일 년간은 이사를 염두해두고 잠시 살 요량으로 입주한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 화장실과 작은 베란다가 있었던 신축 아파트. 새 아파트의 위엄을 나타내는 거대한 아파트에서 내가 살던 한 동만 임대였고 평수도 가장 좁았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몇 동에 사느냐고 물었다. 순간 난 내가 사는 동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숫자는 곧 내 신분이었다.

108동이요. 아.. 108동.


난 괜히 뜨끔했고, 속상했다. 왜 나는 좁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에 사는 걸까 하곤 약간의 자괴감마저 들었다.

하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 부부동반 모임을 하게 됐다. 그중 한 명이 공무원의 아내였는데, 그녀가 공개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 다들 집이 자가예요 전세예요? (월세는 답안지에도 없었다)

- 몇 평이나 돼요? 30평대?

나는 또 괜히 뜨끔했다. 그래서 대답을 남편에게 넘기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나 그 여자 별로야.”


글을 쓰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집이 생각났다. 자취를 할 적 매달 내는 월세가 버거워 이 돈만 아끼면 몇 천은 모았겠다며 홀로 신세한탄을 했던 때도 떠올랐다.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이 나의 첫 집이 생긴 시기라는 것은 실은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월세, 전세를 떠돌지 않아도 되는 나의 상황. 어쩌면 내가 신분 상승이라도 된 것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우습지도 않다. ‘집’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신분이 되고 계급이 되어버린 것인지 씁쓸할 뿐이다.


새롭게 이사 온 집의 인테리어는 포기했다. 게으름, 그리고 실용성과 가성비에 익숙한 나의 취향 때문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당분간 집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집 앞에 어떤 음식점이 있고 근처에 공원은 있는지, 옆집엔 어떤 사람이 사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 집 베란다에선 무엇이 보이고 내일은 무엇이 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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