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장악하곤 하는데, 나에게는 ‘미움’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미움을 받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공포와 두려움은, 행복하다는 희망과 확신보다 훨씬 크고 강렬하다.
결혼을 하면 거실에 예쁜 책꽂이를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카뮈나 김승옥, 르 클레지오의 책들을 새로 구매해 책꽂이에 꽂아야지, 이런 생각. 하지만 결혼 후 내가 처음으로 구매했던 책 제목은 다름 아닌 ‘미움받을 용기’였다.
당시의 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대상이었다. 어리숙하고 살갑지 않은 성격 탓에 남편 집안 어른에게 밉보였던 것 같다.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에 한, 두 달 정도를 매일 울면서 잤다. 속상한 마음에 술도 자주 마셨고 남편과도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때의 난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누가 나를 미워한다’ 내지 ‘나 요즘 미움받는다’라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마음속에 비밀처럼 가지고 있자니 가슴이 묵직했고,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도 받고 싶었다.
상대가 누가 됐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단단하지 않은 마음의 조각은 이리저리 굴러 떨어졌고 바스러졌다. 어떨 땐 바스러진 마음을 짓밟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명제는 ‘나는 미움받는 사람이다’라는 보편 명제로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했고, 그 몸싸움에서 밀려난 것은 나를 지탱하던 자존감이었다.
사실 이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원했던 것은 허물어진 내 마음을 다독이는 고마운 위로가 아니었다. 실은 미움이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향한 또 다른 미움이 내겐 필요했다. 그가 나쁘다, 잘못됐다, 너무한다 등.
친한 친구한테 하소연을 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다른 미움이 내가 받는 미움을 상쇄할 순 없었던 탓이다.
미움이 가진 힘은 실로 대단했다. 눈을 뜨면 날 미워하는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그래서 그를 향한 미움이 내 마음을 움직여 죄 없는 결혼생활을 미워하게 됐다. 그 사람과 가까운 다른 가족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내 하소연을 잘 들어주지 않는 그날의 남편을 미워하게 됐다. 미움이 미움을 낳았고 또 다른 미움이 계속 생성되면서 그것은 나를 철저히 좀먹기 시작했다. 야금야금.
그런 상황이 석 달 정도 지속되고, 다행히(?) 그 관계는 회복됐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 어른 앞에 서면 조건반사적으로 움츠러들곤 한다. 마치 파블로브의 개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넘겨버려야 할걸.
그렇다면 미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때의 난 왜 이리 힘들었을까?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어쩌면 또 다른 미움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미움을 받는 그 시간, 나 역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을 미워했고, 미움받는 나 스스로를 열렬히 미워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미움은 받는 것뿐 아니라 주는 것 또한 괴롭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력으로 돌아가는 내 안의 미움 스위치를 내려버린다면 그 괴로움은 절반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 곳이 답답해진다. 미움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언급했는지 모를 만큼, 미움으로 가득한 글이 됐다. 미움은 참, 미운 단어다.
미움받을 용기에 앞서 지금의 난 내 안의 미움을 잠재울 시간이 필요하다. 한숨 한번 쉬고 방금 내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씁쓸하지만 익숙한 맛이다. 마음을 다친 날은 나에게도 보상이 필요하다. 다친 마음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내버려 두는 것. 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