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비혼주의자

나 결혼할 수 있을까 <1>

by 유스
“소개팅할래? 괜찮은 사람 있는데?
“남자친구 있어요? 우리 아들이랑 잘 어울리겠네.

“아.. 요새 비혼이 대세더라고요. 저도 대세를 따르려고요.”



나는 실은 비혼주의나 독신주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삼십 대가 넘어가면서 누군가 이성을 소개해준다고 하면 매번 똑같은 거절의 대답을 하곤 했다. 패션이든 감각이든 뭐든 유행에 뒤처지는 나이지만, 결혼만은 대세를 따르겠다며.

거절의 이유는 별게 없었다. 실은 이성을 소개받는 게 이상하리만큼 부끄러웠고, 내가 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 역시 그다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두 번의 거절이 이어지면서 타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대세를 따르는’ 비혼주의자, 혹은 독신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쉬지 않고 연애했다. 남자친구 없이 못 사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랬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살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그가 군대를 가면서 또 다른 남자친구를 만났으며,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가서 바로 위 사수와 연애를 했다. 당시에는 일을 하고 경력을 쌓느라 정신없었고, 결혼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듯 자연스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삼십 대가 되면서 직장 사수와의 4년간의 연애는 마침표를 찍었다. 이별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결혼이었다.

그는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났는데,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넘긴 그는 결혼에 대해 마음이 급했다. 반면 나는 아직 느긋했다. 난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의 집에서는 결혼을 기정 사실화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막내아들 장가를 위해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향의 마지막 땅까지 팔았다고 했다.(그는 아버지가 땅을 판 종잣돈으로 자신의 직장이 있는 지역에서 ‘신혼집’을 검색하면서 나에게 발각이 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혹은 다행히도) 우린 헤어졌다. 결혼이라는 목표를 향한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와 이별 후 만났던 남자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여섯 살 어린 남자였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삼십 대였고, 남자친구는 이십 대였다. 서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조건이나 배경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난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다.

그와는 2년여간 연애했다. 그와의 이별의 이유 역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또 결혼이었다.

술을 먹고 기분이 좋았던 날, 나는 그에게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장 하고 싶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전화 속 어린 남자친구는 침묵했다. 이후 우린 이별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애가 마냥 지속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그 이별 이후 나는 스스로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주변에 남자도 없고 이제 이성을 만나려면 소개에 의존해야 하는데 주변에 소개해줄 사람은 없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말을 보며 소개팅 어플을 깔아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소심함에 관두자 하며 휴대전화 화면을 꺼버리는 일이 반복.

다시 말해 내가 '비혼주의자'라고 말하게 된 이유는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에이,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특히 점점 늙어가는, 홀로 계신 엄마의 세월과 마주할 때 먹먹해지는 가슴을 달래는 방법은 나 스스로 결혼에 대해 선을 긋는 것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엄마하고 같이 살게. 이렇게.


자, 결론이 나왔다. 연애로 삶의 활력을 삼던 내가 스스로 ‘비혼주의자’가 되겠다고 말해왔던 것은 날 위한 자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스스로 비혼을 원해서라기보다,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에 의심을 품은 가짜 비혼주의자. 그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