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소개팅

나 결혼할 수 있을까 <2>

by 유스

H는 소개팅에서 만났다.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동갑내기 남자라고 했다. 주선자를 통해 들은 이미지는 뚱뚱하고 산적 같은 이미지의 사람.


소개팅 전 내가 연수차 이탈리아를 갔을 때, 주선자에게 털이 수북하고 덩치 큰 유럽의 남자 사진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한국으로 보쌈해가고 싶네, 니 남자도 찾아봐줄까 어쩌고 저쩌고. 그때 주선자가 H에게 말했다고 했다.

“용기를 내.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니까 너에게도 희망이 있어.”


나는 그때까지 동갑내기와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 없었고(해보긴 해봤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외형이 아니었던지라(주로 마른 체형을 만나왔다) 그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소개팅 당일, 난 흰 남방에 청바지 하나 대충 걸쳐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 먼저 이 남자를 소개받게 된 계기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유독 명리학(쉽게 사주라고 표현하자)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우연히 내 사주를 봐준 일이 있었다.


때는 2017년 연말.

내용은 길지만 짧게 정리하면

"2018년 2월 4일, 다시 말해 그해 입춘까지 남자를 못 만나면 너 큰일 난다. 때를 놓치면 너의 나이 마흔, 오십이 넘어서야 인연이 나타난다."


맙소사. 나도 꽃다운 나이(그게 이십대라면 할 말 없지만)에 연애도 해보고 싶은데 마흔, 게다가 오십에 만날 수도 있다니.

사주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 사람은 부정적인 말에 더 마음이 쓰이는 법 아니겠는가. 당시 내 마음이 어땠을지는 글로는 표현이 힘들다. 그래도 노력해보자면 절망이란 단어가 어울리겠다.


이 기분은, 죽은 듯 뛰는 맥박 마냥 간간히 들어오던 소개팅도 비혼주의자라며 내치던 내 마음에 시동을 걸게 된 계기가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소개팅해줘."라고 말하게 된 계기 말이다.


참고로 2월 4일 전까지 나는 단 한번, 소개팅을 빙자한 여러 명과의 술자리를 했지만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그는 개그맨 김원효를 닮은 젠틀맨이었지만 우리는 공평하게, 서로에게 끌리지 않았다.

그리고 난 2월 3일 솔로 전야제라는 명분 하에 신명 나게 술판을 벌였다. 술 마실 핑계로는 아주 훌륭했다. 그날 친구들은 술 취한 내게 슬퍼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그를 만나던 장면으로 전환.

지각이었다. 늘 느릿한 내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소개팅 자리에선 너무 큰 실례였다.


-다음은 주고받은 메시지-

"H씨 도착하셨나요?"

"네~ 도착했어요~"

"헉"

"도착하시면 전화 주세요^^"


10분 지각. 택시에서 내린 난 난감한 표정으로 뛰어가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그를 만났다.

첫눈에 이 사람과 결혼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냐고? 천만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도) 미안하지만 '어라, 이 사람 나하고 진짜 동갑이야? 늙어 보이네?'


아뿔싸.

생각에 그쳤어야 했는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랑 동갑 맞으세요?"


지각에 막말까지. 나 왜 이러니?

매거진의 이전글가짜 비혼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