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할래요?
나 결혼할 수 있을까? <3>
# 소개팅 전날
다음은 주고받은 메시지
H: 한식, 일식, 양식, 중식, 잡식 등 큰 것만 정해주시면 식당 정해볼게요.
나: 그럼 한식 하고 일식! 분위기 이런 거 없어도 좋아요. 국밥도 좋고 다 좋습니다.
H: 한식 하고 일식. 참고해서 찾아볼게요. 7시에 만나서 같이 움직여요.
나: 네 알겠어요. 그럼 낼 뵙겠습니다.
그는 나에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뭐든 좋지만, 국밥도 좋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털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국밥을, 특히 순대국밥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개팅을 앞두고 상대를 탐색할 시간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만나자. 사주에서 세워놓은 데드라인은 이미 지났지만 그래도 얼마 안 됐으니까 괜찮..겠지?
# 소개팅 당일
내가 경험해온 일반적인 소개팅 코스는 식사-커피 순서이다. 소개팅을 하면서 정말 밥이 먹고 싶어서, 혹은 그 밥집이 가고 싶어서 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연히 소개팅을 하면서 '오 대박 여기 완전 맛있네'라며 감탄을 자아내면서 먹었던 적도 없다. 그만큼 소개팅에서 밥이란 것은 의례적으로 지나치는 의식에 불과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치아에 덜 끼고, 먹을 때 번잡스럽지만 않을 정도면 된다. 딱 그 정도.
H가 생각해온 일식집은 갑작스레 문을 닫은 참이었다. 그는 당황했다. 난 그가 더 당황해하기 전에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당황하면 나도 당황할 거 같아서였다.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둘 다 아는 작은 일본 라멘집으로 향했다. 2인용 테이블 서너 개, 4인용 테이블 2개 정도인 아주 작고 비좁은 음식점이었다. 예전에 친구하고 정말 배고파서 왔던 곳. 옆 테이블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서 모든 고객이 흡사 단체석에 앉은 것 같은, 가족 같은(?) 분위기의 음식점. 하지만 어색하느니 오히려 복작거리고 적당한 소음이 있어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 메뉴를 시키고 어디 사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주선자에 대한 이야기 등 소개팅이라면 의례 하는 말들을 내뱉었다. 왠지 옆 테이블의 남녀가 우리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음식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후루룩 삼켰다. 그는 음식을 먹다 가게의 텔레비전을 슬쩍 보며 어색한 공기를 삼키곤 했다. 나 역시 머쓱해진 시선으로 그의 시선을 쫓았다.
사실 소개팅을 하기 전부터 나는 H와 친해지고 싶었다. 굳이 남자친구가 아니어도 인간적으로 교류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유는 그의 직업 때문이었다.
나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영화 쪽에 관심이 많은 터라 영화 관련 기획일을 하는 그에게 직업적인 호감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H가 기획하는 페스티벌을 몇 해 동안 쫓아다닐 정도로 '팬심'이 두터웠기에, 그는 몰랐겠지만 그날의 소개팅은 나에겐 일종의 팬미팅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개팅이 잘 안될 경우를 대비해 주선자에게도 "소개팅 여부와 상관없이 나중에 셋이 술 한잔 하자"라고 말을 꺼내놨던 바, 그 사람과 술 한잔 하는 것이 나의 언젠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음식을 다 먹어가고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끊어 난 그에게 말했다.
"술 한 잔 할까요?"
그는 당황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술을 마시자네?
"그럴까요?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