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할 수 있을까? <8>
결혼을 준비하며 정신없는 날이 몇 달 이상 이어졌다.
그 사이 밤이 되면, 나는 낮과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밤이 되면 건넛방에서 자고 있는 엄마 얼굴이 슬며시 떠올라 울컥했고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떠올라서 마음이 타들어갔다. 늙은 엄마가 애잔했고 스스로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이 명확하지 않은 슬픔은 점점 번져나갔다. 슬픔처럼 전이가 쉽고 번식이 강한 것도 없었다.
스스로를 향한 감정이 서서히 H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결혼식 날짜가 줄어드는 것과 비례해 그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강해졌다.
해답을 밖에서 찾을 순 없었다.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이것이 연애였다면 난 연애의 마지막 단계에 서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았다 슬펐다 기뻤다 짜증이 났다. 나보다 한해 일찍 결혼해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정에게 이 감정을 토로했다. 정은 이것을 메리지블루라고 말했다.
- 결혼식 전에 메리지 블루 겪는 사람들이 많대.
- 그게 뭐야. 우울증 같은 거야?
- 응. 결혼 전에 여자들이 우울해하는 거. 나도 좀 그랬던 거 같아.
야. H를 믿어봐. 네가 고른 사람인데 뭔가 다르겠지.
- 글쎄...
메리지블루는 예전에 로드샵에서 샀던 매니큐어 이름이었는데. 정과 대화를 하면서 인터넷 창에 메리지블루를 검색해봤다. 결혼 전 우울증. 누군가는 결혼 전 준비의 마지막 관문이라고도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이 같은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두렵고 울컥하는 형체 없는 이 감정의 근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한다. 그런 내가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결혼을, 인생에 커다란 파장을 가져올만한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이직을 하고 이사를 가는 그런 류의 결정과 달랐다. 이 한 번의 결정이 내 인생의 한방이 될 수 있었다. 대박 아니면 쪽박.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내가 무척 가여웠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존재는 나였다. 연애나 하지 왜 결혼을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할까.
결혼식이 2달가량 남았을 때, H와 처음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보수적인 그의 집안 분위기가 점점 날 서게 느껴졌다.
신혼집은 H의 부모님 집과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를 계약할 때만 해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점점 시부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자문하게 됐다. 잠시 결혼에 미쳐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는 생각이 용암처럼 쏟아졌다.
H의 엄마 가게에서 깨진 화분을 정리할 때 맨손에 흙을 묻히며 치우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하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장갑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런 하인 같은 나를 보며 아는 척하지 않았던 H의 어머니 표정도 떠올랐다. 평소와 다름없었을 그 표정이 몹시 차갑고 냉담하게 느껴졌다.
모든 사소한 것이 부풀어졌고 나는 밤마다 괴로웠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시간이 끝나가는데 다 풀지 못하는 시험문제를 보며 어찌할지 몰라 오금이 저렸던 바로 그 기분이었다. 끔찍했다.
잠 못 드는 새벽 H에게 문자를 남겼다.
H, 결혼 말고 연애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 진심이야.
우리 잠시 얼굴 보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
이런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들어갈 순 없어.
일주일이라도 떨어져서 생각을 정리해보자.
H는
그래
라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매일같이 엄마 조와의 말다툼도 시작됐다.
결혼에 대한 확신을 타인을 통해서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 조는 그 확신을 꺾기 일쑤였다. 조는 H에 대한 실망감을 내 앞에서 서슴없이 드러냈고 결혼 준비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실은 그것은 조가 가진 H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딸을 결혼시키는 엄마의 메리지블루였다. 엄마 조 역시 메리지블루 안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던 조는 나의 결혼 롤모델이 될 수 없었다. 혹시 나도 엄마처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면 어떡하지. 조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딸이 나처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면 어떡하지.
우리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서슴없이 할퀴었다. 가장 애잔하고 연민의 대상이었던 엄마 조와의 싸움이 연일 이어지면서 메리지블루고 뭐고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이 지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