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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Nov 21. 2020

결혼 이야기 혹은 사랑 이야기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혼을 겪는 남편인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노래를 부르거든요. 가사가 기가 막힙니다. 그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코 개인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것은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지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내 삶을 변화시켜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살아가자 살아가자


날 너무 필요로 하지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날 가지고 놀고 이용하지만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니요. 너무나도 상반되고 대립적인 성질의 것들이지만 이런 것이 모인 덩어리가 사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안잖아요.


저도 그래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좋다가도 가슴이 터질 정도로 분노하기도 해요. 보고 싶어 죽겠다가도 꼴 보기 싫어서 죽겠거든요. 이토록 상반되는 감정들이 엉키고 마음을 휘젓다 보면 내가 사랑에 빠졌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나쁠 수만은 없는 것이 사랑인가 봐요.

노래를 듣다 보면요. 처음에 가사의 화자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것을 깨달아요. 그리고 상대를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갖게 되고, 이제는 함께 살아가자라고 말하네요. 이 얼마나 멋있는 가사인지요. 함께 살아가자는 말처럼 은은하지만 강렬한 고백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영화의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라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이혼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인데 말이죠. 어쩌면 헤어지는 과정까지 결혼에 포함된 과정인지도 모르죠. 서툰 남녀가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고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끔찍한 상처를 주기도 하는 사이. 이게 부부이고, 사랑인 것 같아요.

결혼, 이혼이라는 통념적인 사회 제도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지 않겠어요? 대립적인 성질이 한데 엉켜 공존하는 그것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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