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해가 뜬다. 조리원 작은 창문으로 해가 들어온다. 기분이 썩 괜찮다. 빛이 가진 에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한의원을 다녀왔다. 역시 침을 맞고 온 직후에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역시 나는 정신보다 몸에 지배되는 동물이다
아침에 한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조리원에 들른 남편을 만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결혼 하나는 잘했어.
커피를 정신적 안정제로 여기는 나를 위해 남편은 집에서 챙겨 온 739ml 스탠리 텀블러에 따뜻한 디카페인 카페라테를 벤티 사이즈로 넣어 내게 건넸다. 텀블러를 챙겨 온 것도, 그 텀블러가 739ml인 것도, 스타벅스를 선택한 것도, 벤티 사이즈를 주문한 것도, 어느 하나 빠짐이 없다. 역시 내 남편은 최고다.
3평 남짓 조리원 방에서, 그것도 햇살이 들어오는 조리원 방에서, the czars의 killjoy를 틀어놓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지금이 꽤나 근사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두 번째 출산은 없을 것이니(물론 내 인생에 출산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지금의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어제 남편이 선물해준 빼빼로와 디카페인 카페라떼. 조리원에 들어와서 생각없이 볼 것을 찾다가 드라마 도깨비 정주행을 시작했다.
오전 11시에는 신생아실로 아이 면회를 갔다. '제발 눈 감고 자고 있기를' 바랬지만 아이는 조무사 품에 안겨 무엇이 궁금한지 그 큰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맙소사. 또 잠을 안 잤군. 하지만 그래도 누구 딸인지 예쁘네.
불편한 다리로 절뚝거리며 아이 면회를 온 산모를 안타깝게 여긴 간호과장은 친절히 유리창 밖으로 나와 내게 아이의 수면 패턴을 설명해준다.
잠을 잘 때도 있긴 하지만, 잘 안 자는 편이라고.
"현재 신생아실에서 가장 잠을 안 자는 아이예요."
남편 바리에게 전화를 해서 말해줬다
"자기야, 우리 아가가 신생아실에서 1등이래! 잠 안 자는 걸로!
바리가 웃는다
"2등보단 낫다. 그렇지?
나도 웃는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그 큰눈으로 두리번 거리니. 아니다. 궁금하겠지. 어두운 뱃속보다 환한 세상 밖이 더 재미있지?
머릿속을 휘젓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그리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 22%는 사소한 사건,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머지 4%만이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이 메시지가 전달하는 바는 이것이다. 미리 걱정하지 말라.
10분 이상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아는 걱정거리 40%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4% 미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