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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Nov 11. 2021

출산 이후

출산 6일 차 일기_긍정이 필요하다

늘의 날짜_ 2021년 11월 11일


출산을 하기 전, 출산 후 100일 일기를 써보겠다는 다짐은 허황된 것이었다. 아직 육아를 시작한 것도 아닌 조리원 생활 중인데도 몇 글자에 불과한 기록의 문턱이 이리 높을지 몰랐던 것이다.

  

오늘로 조리원 생활 6일째가 됐다. 아이가 태어난지는 15일. 아이를 마지막으로 안은 것이 11월 3일 정도이니 안아보지 않은지는 8일째가 됐다. 아이를 안지 않은 8일은 슬로 모션처럼 흘러갔다 정체됐다 다시 흘러간다. 꾸역꾸역 8일을 채웠고 앞으로 8일을 더 채워야 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 역의 공유가 죽지 않고 900년을 살아가는 형벌 같은 느낌이다. 물론 900년에 비하면 가볍다.    


정리안된 조리원 내 방.

 

아이를 안지 않는 지난 8일간 내 아이가 잠을 잘 자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른 산모를 통해 들었다. 때문에 간호조무사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내 아이를 더 많이 안아준다고.  

들리는 말로 조무사들은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지 않아서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저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하루 두 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면회하는 시간이 되면 조무사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또 잠을 자지 않아 미움받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고.  

    

나는 임신 막달인 35주 때부터 환도가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다리를 절뚝거렸고 제왕절개를 앞둔 40주에 들어섰을 때는 거의 걸을 수가 없어 스파이더맨처럼 손목의 힘으로 벽을 잡고 다녔다.(마침 이때 남편과 매일 저녁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정주행 중이었다.)

그때 서혜부 인대에 무리가 많이 갔는지 아이를 출산하고도 쉽게 걸을 수가 없다. 몸을 움직이는데 제약을 느끼는 일이 평생에 처음이고, 앞으로 닥칠 육아 난관을 생각하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가 그저 원망스럽고 속상할 따름이다. 하지만 화가 나도 몸은 움직여주지 않는다.(그러니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조리원에 들어오고 주말을 제외한 모든 평일에 한의원에 간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불편한 다리가 조금 낫는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불편해 잠을 뒤척인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니 도깨비가 받았던 900년의 형벌을 떠올리면 감사해야 할 판이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눈물이 난다. 남편은 내가 산후우울증에 걸린 것일까 봐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속마음을 말하자면, 스스로 산후우울증에 걸렸을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몸이 아프지 않을 때 제법 까불고 웃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도 읽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까지 꼬박 챙겨보는 걸 보면 그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난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눈물이 날까? 닥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9일 남은 조리원 퇴소 후 제약이 따르는 몸으로 잠 안 자는 신생아를 돌봐야 된다는 중압감은 초긍정맨이라도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걱정 부자요, 건강염려증까지 갖고 있는 피곤한 사람이니까.  

 

엄마 영이 아침 통화 중 말했다.

"너 임신할 때부터 애 낳으면 징징댈 줄 알았어."

역시 엄마의 혜안은 대단하다.  

 

남편 바리는 입술에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올라왔다. 결혼 후 두 번째 보는 입술 포진 같다.  

제왕절개 후 7박 8일 입원실에 있을 때 몸과 마음의 고통을 남편에게 24시간 호소했던 것이 포진의 원인 같다. 마음 깊이 반성 중이다. 나는 왜 늘 고통을 바리와 함께 나누려 하는 것인가. 고통은 나누면 배가 된다...

 

출산 전 조리원 생활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수다 떨고 친해지고 싶었다랄까.

어중간하게 외향적이고 어중간하게 내향적인 사람인 나는 조리원에 들어온 이틀까지 질문도 많이 던지고 까르르 웃고 떠들었지만 셋째 날부터 에너지가 방전되더니 이제는 작은 방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 편하다. 바리는 내게 조리원 동기모임(줄여서 조동) 회장을 하라며 사식으로 값비싼 홀케이크까지 넣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치 딸을 반장선거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아빠 미안해. 나는 반장감은 아닌 거 같아..!) 

 

오늘은 빼빼로데이다. 지난해 오늘 바리와 나는 베트남 여행을 갔다. 새벽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편의점에 다녀온 남편이 빼빼로를 건네었던 것이 기억다. 올해 바리는 6종의 빼빼로를 선물했다. 그는 다리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가야 하는 나를 태운 차 안에 종류별 빼빼로를 준비해 놓았다. 신상품 제주감귤 빼빼로, 꼬깔콘 빼빼로 등을 보며 난 새삼스레 생각했다.

결혼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어.      

   


이중 벌써 하나는 먹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내 세계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지배다. 조리원 퇴소 후 수면, 체력 부족으로 지쳐있을 나, 아픈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를 챙기느라 더 힘들 남편을 생각하며 다가올 미래, 다시 말해 정확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어제저녁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줄여보는 연습을 해본다. 부정적인 생각이란 자고로 녹진한 늪과 같아서 한번 낚아챈 발목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비지엠은 velvet underground_sunday morning. 

에드워드 호퍼 그림 sunday early morning 그림을 보며 자주 들었던 노래이다. 가사 의미를 몰라 연관성이 있는 조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악을 들으면 호퍼의 나른하고 따뜻한 그림이 떠오른다. 부정적 생각이 떠오르면 반사적으로 몸에 부 대감을 주는 것 같은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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