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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Nov 13. 2021

출산 17일 일기

단유에는 고통이 따른다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친구(엄밀히는 남편 친구)가 사다준 샌드위치 한 조각을 우걱우걱 입에 넣고 쓰고 있다.


조리원이 덥다.

갓 출산한 산모들은 출산 후 6주간 산욕기라 불리는 시간을 지내는데, 이때 온몸의 관절과 뼈가 늘어나 있어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한다.

차갑게 있으면 안 되고 찬 물도 마시거나 닿으면 안 되고 온 몸의 자세도 바르게 있어야 한다. 미역을 많이 먹어야 좋고 온 몸의 관절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꽁꽁 싸매고 있어야 한다.


제왕절개로 출산 후 7박 8일을 입원했는데 입원실은 조리원보다 더 더웠다. 지옥 같은 더위였다. 마음 같아서는 온 창문을 벌컥 열고 선풍기를 쐬며 시원한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지만 '산욕기'라는 중압감 때문에 마음 편히 창문도 열지 못했다. 내 방 온도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이라니. 무력감이 몰려왔다.


아침식사 때 만난 조리원 산모들은 새벽 내 더위에 지쳐있었다. 아침 온도가 4도밖에 안 되는 날씨인데 창문을 열고 잤다는 이가 있었고 그 마저도 충족이 안돼 선풍기를 틀었다는 이도 있었다.

태생이 쫄보인 나는 위아래 내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잤더랬다. 창문을 꼭 닫은 채로. 그리고 새벽 2시 콧잔등에 고인 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지옥이 별게 없구나 싶은 마음으로.

낮에는 이 정도의 창문을 열어두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땀이 나고 있다.


어제오늘 다리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 다리를 지탱하느라 애쓰는 왼쪽 다리와 무릎이 쑤시기 시작한다. 늘 그렇다. 아픔은 아픔을 낳는다. 어제 말했듯 정신보다 몸에 지배되는 사람이다 보니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기분도 쳐진다.

그래도 한의원을 다녀와서인지 오전보다는 괜찮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아픔에 몰두하지 말자.



방금 막, 조리원에 들어와 시작한 드라마 도깨비 정주행을 끝냈다.

(스포 있으니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말 것)


나의 소감은 이렇다.

쌍한 도깨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스스로는 죽지 않은 채 900년의 삶을 살아온 도깨비가 가슴에 꽂힌 형벌의 칼을 빼고 이제 무로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도깨비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환생을 기다리며 드라마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형벌. 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면 이 얼마나 괴로운 삶인가.


내가 겪고 있는 이 통증은 언제 끝이 날까?

오전 한의원에 가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는 백발의 할아버지를 보고 남편 바리에게 말했다

"저 할아버지가 나보다 더 잘 걸으시네.

기약 없는 아픔은 몸보다 마음을 지치게 한다.



친구가 사다준 맛있는 바깥 음식.


어제 신생아 면회시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난 내 아가 얼굴에 태열이 올라와있었다.

짧은 머리카락도 땀에 절었는지 잔디인형처럼 서있던데. 너도 덥구나. 우리 집에 가면 지금보단 시원하게 있자.



단유를 했다.

출산 전 내 엄마 영은 "넌 몸이 약해서 모유 못 먹여. 바로 단유 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나는 그때마다 "상황 봐서 할게. 모유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잖아."라고 말했다

그때의 호기로움은 내 몸을 찾아온 아픔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애초에 모유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단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또 이렇게 빈틈이 있을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출산 일주일, 나는 단유 했다.

입원실에 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는데, 수술 후 회복을 해야 하는 몸은 잠을 자지 못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어지럽고 뜨거웠고 당장이라도 기절할 거 같았다. 살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이 들수록 잠을 잘 수 없었고 난 송장처럼 눈을 뜬 채 밤을 지새웠다.

그 일주일은 입원실의, 조리원의 더위보다 더 많이, 지옥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내 다리가 원망스러웠고 회복하지 못하는 몸뚱이가 염려스러웠고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유리창 안에 갇혀있는 내 아이가 불쌍했다. 매 순간 눈물이 흘렀고 나는 결국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줄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단유가 조건이었다.


모유를 내 아이에게 먹이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실로 크다. 조리원에서 모유에 대한 수업이나 설명을 들을 때마다 감 먹은 듯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 죄인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들은 모유를 찬양하며 모유가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산모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설파한다. 모유를 먹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만 분유를 먹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조리원 산모들이 새벽 수유 콜을 받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 모유를 짜낼 때의 힘듦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초유만을 겨우 짜냈던 내 젖가슴은 공감하지 못한다.

남들의 불어 가는 젖가슴과 달리 임신 전으로 돌아가는 작은 내 젖가슴은 더욱 자신감을 잃고 옷 속에 파묻힌다.


수면제 한알과 단유. 그 둘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처방 후 지금까지 단 한알의 수면제만 먹었는데, 만약 그 한알을 참았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생각과 깊은 우물의 샘 같은 죄책감을 지나 내린 결론은 그 한알을 참았다 해도 난 단유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몸 회복을 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 위에 아이를 올려 젖을 물리고 방안에 돌아와 유축을 하는 생활은 나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일이었다.

고작 일주일 잠 못 잔 것으로 단유를 했다는 비난도, 아이에 대한 애착이 그것밖에 안되냐는 비난도 듣지 않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의심하지 않겠다. 초유를 먹일 때 아이가 입을 버끔거리며 내 젖가슴을 물었을 때의 기분과 감촉이 생생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눈물이 나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 이제는 울지 않으려 노력해보겠다.


조리원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갔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기까지 앞으로 일주일.

내일 아침, 기적처럼 다리가 나아 망아지처럼 밖을 뛰어다니게 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태열이 올라온 내 아이를 품에 폭 안고, 따끈하게 탄 분유를 마음껏 먹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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