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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Nov 14. 2021

출산 18일 일기

아픈 사람을 대하는 방법

2021년 11월 14일 일요일 날씨 맑음



글을 쓸 때가 되어야 날짜를 자각한다. 오늘은 14일이고 일요일이고 날씨는 화창하다. 오전 8시 아침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오로 패드를 갈고 왔다.


코로나 시기의 조리원은 단조롭다. 외부 면회는 물론이고 외부 강사가 들어와 진행했던 요가 수업 등 프로그램도 전면 중단됐다.

모유수유도 하지 않다 보니 나는 하루 종일 오도카니 방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고 책을 읽고 잠을 잔다. 시간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뿐이다


조리원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마음이 동하는 시간은 창고같은 방에 있는 반신욕기, 좌훈기를 하며 책을 읽는 시간이다.

어제 드라마 <도깨비> 정주행을 끝내고 드라마 <나의아저씨>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첫 화였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아직은 정체를 모르겠는 극 중 아이유. 할머니의 요양 병원비가 밀리자 어두운 밤 거동이 힘든 할머니를 침대에 뉘어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 커다란 환자용 침대를 끌어 아스팔트를 달리고 자동차 옆을 지나간다. 스물네 시간 하얀 천장만 바라보던 할머니는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아래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달린다.

돈이 밀려 야반도주를 하는 비루한 상황, 침대에 누운 할머니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손녀는 할머니의 시선을 쫓아 하늘을 힐끗 본다.


아무런 면회도 외출도 되지 않 조리원이 어떨 때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산후풍 걱정으로 창문도 다 닫아놓고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으니 더욱더.

조리원에 올라오기 전 입원실에 있을 때 답답한 마음에 병원 테라스에 나간 적 있다. 밤의 그 차가운 공기가 어찌나 선물처럼 느껴지던지.


아파보니 좋은 점이 있다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주변에 얼굴에 마비가 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안부를 어떻게 물을지 고민하는 내게 남편 바리는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해"라고 말했다.

"얼굴 괜찮아졌네"라며 건네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 묵고 있는 산부인과와 조리원에서 나와 내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환도가 좋지 않은 산모', '다리가 불편한 산모'로 불리고

내 아이는 '환도가 좋지 않은 산모의 아기', '엄마가 보러 오지 않는 아기', '그래서 간호사 손을 많이 탄 아기'라고 불린다.


들은 내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늘 친절히 내게 묻는다. 내 다리의 차도에 대해.

어제 아침 나이가 지긋하신 청소 담당자 내게 물었다

"다리는 좀 나았어? 다리를 끌고 다니던데 안타깝네. 얼른 나아야지. 쯧쯧

어제저녁 앞방의 산모는

"다리 왜 그래요? 걱정되겠다. 집에 가서 애 어떻게 보려고. 에휴."



이들의 친절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친절한 기분에 빠져든다. 아픈 다리가 더 욱신거리는 기분. 그만 물어봐주길 바랄 뿐.

아픈 상대에게 가장 친절한 방식의 태도는 그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일기는 본디 하루를 마감하며 쓰는 글이다.

나의 조리원 일기는 하루를 시작하며 쓴다.

오늘 하루 내 건강이 나아지길 바라며, 내 아이가 오늘 하루를 더 잘 버텨주길 바라며 쓰는 하나의 기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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