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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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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Mar 20. 2022

존경하는 내 엄마

수술 후 13일 차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날씨 흐림  


동네 스타벅스에 왔다.

남편 바리가 딸 마리를 돌볼 동안 혼자 밖에서 차라도 마시고 오라는 남편의 특명이다. 실은 저번 주부터 혼자 차라도 끌고 나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차이다.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바리가 내게 외출을 권유했을 때 엄마 영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했다. 집에만 있어 답답해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오늘은 혼자 걷고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내게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 것 같다.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으론 곧바로 쓰러져 잘 수 있을 것 같지만 누우면 잠이 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으니 양팔이 저릿저릿하고 숨이 가쁘다. 마치 제왕절개 후 관처럼 느껴졌던 좁은 회복실에 누워있던 그때 그 기분. 오늘 새벽엔 바리와 마리가 누워있는 커다란 패밀리 침대에서 문득 숨이 막혀 홀로 거실에 나와 있었다. 거실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지만.  


아프고 난 뒤 엄마 영은 입맛이 없다.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 같다.

지난해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입덧을 경험했을 때 난 미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맛을 느낀다는 것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무언가를 씹고 삼키는 식사를 하는 영을 보 그녀가 지금 입안에 음식이 아닌 모래알을 삼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딸 마리의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와 일주일간 영을 만날 수 없어 혼자 식사를 챙겨야 했던 영은 고작 소보루 빵을 사 먹고 집 앞 분식집에서 순대를 사 먹었다고 했다. 암 환자의 식사라고 하기엔 형편없고 초라한 식탁. 아니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영양가 없는 식사. 걱정되고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날 괴롭힌다.


수술 후 기력이 떨어진 영이 내게 먼저 운동을 가자고 했다. 고작 20분 가량의 산책이지만 회복하려는 그녀의 의지가 반갑고 고맙다.


요새는 담도암 환자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다. 카페에는 무서운 상황들이 넘친다. 수술 후기, 항암 후기, 그리고 이별 이야기.  

오늘 아침 오랜만에 들어간 카페엔 투병생활 끝에 최근 아버지를 보내드린 아들의 글이 올라와있었다.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나처럼 울고 있을 것이다.  

난 이들에게서, 이 카페에서 희망을 보고 싶은데 자꾸 위로를 보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방사선과 항암치료 6개월 여정을 견뎌내야 할 영의 상황이 최근 아버지를 보내드린 아들의 글과 겹쳐 견딜 수가 없어진다.

 

최근 남편 바리와 대화를 하던 중 바리와 나의 차이점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어머니 아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의 차이점은 당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바리는 그의 어머니를 '대단하다', 나는 내 어머니를 '불쌍하다'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난 두 자식을 홀로 키우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에게 의지하지 못하며 '난 기댈 곳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녀가 불쌍했다.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바람과 폭우와 대설이 오가던 그녀의 인생이 불쌍해서, 가엷어서 통곡했던 것이다.  


수술을 하루 앞두고 주치의가 영을 찾아와 물었다. 긴장되지 않느냐고.

침대에 멀뚱히 앉아있던 영이 대답했다. 마치 날씨를 묻는 질문에 답하듯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목소리이다.  

"전혀요.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네요."

젊은 주치의가 웃으며 말다.

"다행이네요. 보통은 긴장을 많이 하시는데 안 하시네요. 환자분처럼 체력이 좋은 분들이 수술 예후가 좋아요"   


암 선고를 받은 내 엄마 영은 장군 같다. 비록 날카로운 화살을 맞고 무릎 하나 고꾸라지긴 했지만, 다른 다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기백 넘치는 장군이다. 나였다면, 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왜 나인지 반문하며 매일 울고 있진 않을까.

영은 지역 병원에서의 수술을 결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가서 명의를 만난다 해도 내가 못 버티면 더 안 좋아질 거고, 지역에서 명의가 아닌 의사한테 수술을 한다 해도 내가 잘 버티면 좋아질 거야. 다 내 운명이야. 만약 수술이 잘못되면 난 여기까지만 하라는 운명인 거야."     


불쌍하게만 생각됐던 영이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암 선고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됐다니.  

   

벤티 사이즈 디카페인 라테 한잔을 모조리 마셨다. 비는 그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남편 바리를 쉬게 해 주고 딸 마리를 돌볼 생각이다.  

내일은 영과 함께 ct촬영을 위해 병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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