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커피

by 유스

어른의 전유물 중 하나는 커피다.

커피의 레벨을 -굳이- 나눠보자면 시럽 및 우유 등 첨가물의 유무 및 첨가 정도에 좌우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쓰디쓴 에스프레소에서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레벨.


내 첫 커피는 레벨의 중간 정도에 있을법한 카푸치노 되시겠다.


때는 중학생 때.
친구 A양을 오랜만에 만나 당시 살던 지역의 번화가, 즉 ‘시내’에 나갔더랬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우리는 셰이크를 시키면 각종 과자, 오징어, 쥐포, 과일 등을 무한리필-물론 리필을 시키는 데는 눈치가 필요하다- 해주던 카페에서 2시간 이상씩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날 역시 그럴 작정이었다. 헌데, 그 날 만난 친구 녀석은 왜인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들떠보였고, 당당해 보였다 랄까.


다음 행선지로 가자는 내 말에 A양이 실눈을 뜨며 조심스레 물었다.


“ 너 커피 마셔봤어? 시시 한 거 말고, ‘진짜’ 커피 말야.”


세상에나. 이 세상에는 커피마저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단 말인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껌벅이며 단어를 찾는 내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A양이 슬며시 웃으며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 마셔볼래? 생각보다 맛있어.”


너에게 상상도 못 할 첫 경험을 시켜주겠다 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호기로운 목소리.


그러고는 10분 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조그마한 커피숍에 들어서 있었다.


시내에는 1,000원~2,000원가량 가격-지금 생각하면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벌써 10년이 더 된 시절인 데다, 거긴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었으니까- 의 한 유명한 커피숍이 있었는데, 그곳은 사장의 자부심 강한 마인드로 유명했다. 어느 곳에 가도 우리처럼 좋은 커피콩과 커피 맛을 내지 못한다, 랄까. 어찌 되었든, 꼬마였던 우리들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액자처럼 섞여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나는 말을 건네는 주인장의 얼굴과 분명 한글로 쓰여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를 메뉴판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A양은 너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당당하게 내 몫까지의 주문을 했다.


“카푸치노 2잔 주세요. 계피 가루는 많이 뿌려주시고요.”


나는 그때의 A양 모습을 잊지 못하겠다. 고백하건대, 그 녀석과 친구를 맺은 지 20년이 지나가지만, 여태껏 지금까지도, 난 그때처럼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했노라.


흰 거품 위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린 카푸치노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맛도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생각보다 시시했다. 단 것 같으면서도 씁쓸하면서도 텁텁하면서 묵직한 맛. 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이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을까.


헌데 말이지, 우스갯소리 같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목 넘김을 마친 카푸치노 한 모금에 어른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커피라는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들였다는 무언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 방금 마신 커피 한 모금으로, 한 뼘만큼의 나이가 자란 기분이랄까.


이쯤 되니, 매일 하루 2잔 이상 마시는 커피가 내가 지금 먹어가는 나이의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로 진지하게 다짐을 해보는 바이다. 내일부터는 커피를 하루에 한 잔으로 줄여봐야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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