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라이프

(2) 라면은 얻어먹어야 제 맛

by 유스
3.jpg 마치 우리가 라면을 먹기로 약속이라도 했던 듯, 라면을 끓이기 위한 대접과 쟁반과 국자가 나타났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에 있는 한 시골 마을을 찾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경로당 어르신들은 식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손님이 왔는데 뭘 줘야 하나.”


갑작스러운 객의 등장으로 할머니들은 고민에 빠지시는 듯하더니

이내 비책을 내신다.


우린 라면 소비 세계 1위에 빛나는 한국사람 아이가.


경로당 밖, 고목나무 밑에 있는 가스 불에 커다란 솥이 올라갔다.

순식간에 음식이 조리된다.


국자를 잡은 오늘의 요리사.

흰머리가 희끗하고, 손의 주름이 고목나무처럼 자글거리는 이 할머니는

그 순간만큼은 수 십 년 경력의 '마을 대표' 세프다.


아니, 어쩜!

라면 물을 그렇게 잘 맞추시는지.


1.jpg 시골마을에는 숨은 세프들이 많다. 10인분이 넘는 라면 물을 조금의 망설임없이 맞추는 할머니도 그들 중 하나다.


언젠가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신라면 분말수프를 개당 150원에 파는 걸 본 적 있다.

웃기려고 올렸나 해서 찾아보니 외국 나가는 사람들이 수프를 많이 찾는다고.

정말 한국은 라면 강국이다.


그나저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만 4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덕션 옆에 쌓여있던 각종 컵라면의 흔적들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내가 끓인 라면은 최악이다.(물의 양을 못 맞추는 것 같다)

내 손에서 탄생된 봉지라면을 맛 본 기억의 연장선상인지,

컵라면에도 선뜻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자취생활 중 라면을 쉬지 않고 먹은 것은

많은 자취생들이 공감하겠지만

'귀찮음' 때문.


그 매력에 중독돼

난 4년간 라면을 무지하게 먹었다.

라면볶이, 짜장라면, 참깨라면, 홍석천 라면, 공화춘 라면 등.


나는 라면을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 즐겨봤던 드래곤볼의 '선두'를 떠올렸다.

이 경우 나의 귀차니즘이 천장을 치고 뚫고 하늘로 솟았을 때다.


만화에서는 이 선두 한알을 먹으면

소화고 나발이고

목구멍에 넘긴 순간부터 효과가 시작된다.

한 알만으로 족히 열흘은 배가 부르고 바닥을 쳤던 체력도 회복된다.


실제 일본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 2위로 뽑혔다는.

나.. 나니?


일본 현지에서 드래곤볼 캐릭터를 상품화시킨 것 중 하나가 그 선두다.

다음은 선두를 구매한 한국인들의 리뷰.


"먹어보면 생각보다 짭짤하고 고소한 것이 목 넘김도 좋습니다."

"중독성 있는 맛입니다. 술안주로 딱인듯 하네요."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먹고 나니 조금 이따 배가 고팠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늘 같은 날,

아, 역시 선두 한 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시골,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