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왕비처럼 대해줄 남자를 만나.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 주입되어온 내 배우자감에 대한 조건은 그렇다. 나를 왕비처럼 대해줄 남자.
내가 척도로 삼아온 '왕비'의 기준은 늘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 대접이란 다시 말해,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인 사이에서 누구 한 명은 져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연애지론이라면, 그것은 내가 아닌 늘 상대방, 남자 친구였다.
우린 그날 처음으로 대면하고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었다.
조목조목 내 잘못을 지적하던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남자니까, 오빠니까 져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난 그럴 생각 없어."
어안이 벙벙. 둔탁한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
이어지는 그의 말.
"팩트에 있어 네가 잘못한 걸 내가 왜 져줘야 해? 어서 나한테 사과해."
이어서 또 어안이 벙벙. 나는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고 어찌어찌 싸움은 마무리됐건만 이날의 싸움은 나에게 꽤나 깊이 각인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쩜 맞는 말 아니던가. 남자니까, 오빠니까 나에게 져줄 이유는 없는데. 나는 왜 그동안 상대방이 나에게 져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을까?
"네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는데 나도 지금 화났어. 너만 화난 줄 아냐?"(그의 말)
맞다. 싸움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의견이 충돌되고 이것이 감정을 건드렸을 때 싸움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해결은 하나가 아닌 서로의 양보와 인정에서 이뤄진다. 연인이란 동등한 관계니까. 누구 하나 우위에 서면 안 되는 것이기에.
"널 왕비처럼 대해줄 남자를 만나"라는 부모님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너를 진심으로 아껴줄 남자를 찾으라는 것이지 너에게 늘 져줄 남자를 찾으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 지랄을 묵묵히 받아줬던 구 남친들아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