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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과 인간됨의 사이에서

by Shadow Tipster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보통의 경우, 그런 순간은 대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묵직한 질문들을 데리고 함께 찾아온다. 마치 먼지 쌓인 창고 속 구석에 방치했던 골동품을 문득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원래부터 그런 질문은 있었지만, 일상의 분주함과 청춘의 어수선함 속에서 자연스레 뒤로 밀려나 잊혀지곤 했다.


이제는 이른바 '오춘기'라 불리는 나이의 문턱에서 나는 비로소 이 질문들과 본격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십대의 방황이 청춘의 특권이었다면, 중년의 방황은 어쩌면 생의 필연적 관문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헤아리듯이, 나는 매일 '어떠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골똘히 생각한다. 이 질문은 다시 '어떠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문제와 이어지며, 둘 사이에 놓인 미묘한 간극을 메우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삶이란 때때로 이러한 간극을 확인하고 줄여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좋음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 정도로 충분할까? 아니면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관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이따금씩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가치관과 부합하는지 자문한다. 때로는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해 내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계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종종 중요한 질문들을 뒤로 미루곤 한다. 어쩌면 그 질문들은 너무 무겁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를 뒤로 미룬다고 해서 그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어느 순간, 삶은 그 질문들을 다시 끄집어내 우리 앞에 던지고 만다.


어릴 적에 미뤄두었던 고민들을 이제 와서 하는 것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고민도 든다.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질문을 던질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삶의 절반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질문을 제대로 던질 능력과 자격을 갖추게 되는지도 모른다. 세월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그런 질문을 견디고 응답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지금이 나의 생애 중 가장 젊은 날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늙어 있을 것이고, 내일의 고민도 오늘의 고민보다는 늦을 것이다. 그렇다면 '늦었다'고 절망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얼마나 빨리 질문을 던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그 질문에 응답하려고 노력하느냐에 있다.


오늘도 나는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명확한 답은 쉽게 얻기 어렵겠지만, 질문을 품고 사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풍요롭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적어도 그 풍요로움 덕분에, 나는 조금 덜 초조하고 조금 더 담담하게 '오춘기'의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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