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들 반짝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잘 다려진 셔츠처럼 각 잡힌 자기소개와, ‘좋아요’가 많이 박힌 SNS 피드 같은 취미 생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며 사람을 안다고, 혹은 알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마치 편의점 신상 음료수처럼, 겉면의 화려한 포장지만 보고 맛을 다 아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 속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깊어서, 몇 번의 대화나 잘 나온 ‘인생샷’ 한 장으로는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정말 알려면, 결국 같이 뭔가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거창한 프로젝트 같은 게 아니어도 좋다. 이를테면, 늦은 밤 출출함에 같이 라면을 끓여 먹는다거나, 비 오는 날 축축하게 젖은 우산을 함께 접는 그런 순간들. 돈을 쓸 때 그 애의 손이 어디로 향하는지, 망설이는지, 아니면 늘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지. 좋아하는 만화책 신간을 발견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런 사소하고 어쩌면 지루하기까지 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잘 포장된 말 대신, 무심코 툭 튀어나오는 진심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모습들이 꼭 세트 메뉴처럼 같이 온다는 거다. 어떤 애는 꼭 자기가 먼저 나서서 무거운 짐을 들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말없이 치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뭘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는 듯 떠벌리지 않는다. 그냥,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반면 어떤 애는 늘 그럴듯한 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슬쩍 뒤로 빠진다. 마치 공부는 하나도 안 했으면서 시험 전날 밤새운 ‘척’만 하는 애처럼. 베푸는 애들은 계속 베풀고, 이해하려 애쓰고, 모르는 건 조용히 찾아본다. 빌붙는 애들은 계속 빌붙고, 아는 척하고, 공부하는 ‘척’만 한다. 이 두 종류의 애들이 꼭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좀, 뭐랄까,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건 비단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멋들어진 명함을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거나, 세상을 바꾸겠다며 투자 발표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창업자들 중에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시장이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꽂힌’ 것만이 정답이라고 믿어버리는 거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노래가 빌보드 1위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팬처럼. 그들의 눈빛은 확신으로 빛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빛은 시장의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열망을 반사하는 것일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지금 하는 말이 진짜일까? 저 웃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함께 라면을 끓일 때, 그 애가 스프를 먼저 넣는지 면을 먼저 넣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라면 국물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혹은 같이 계획했던 여행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을 때쯤,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아, 이 친구는 그냥… 말뿐이었구나. 혹은, 아, 이 친구는 진짜구나.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느리고, 지루하고, 가끔은 배신당하는, 쓸쓸하지만 멈출 수 없는 과정일지도 모른다.